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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문동 Aug 10. 2024

코프스 하버

 진우와 정윤은 코프스 하버에서 만났다.

 정윤은 정식으로 취업을 하기 전 홀로 여행을 떠났다. 어떤 식으로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이번 여행은 용감하고 대담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마를 떠나고 동생들을 떠나고 한국을 떠나서 혼자 남았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사는 법, 사범대를 다니는 시간 동안 자신은 교사가 될 수 없다고 결심한 일, 병들어 누운 자리에서도 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아버지, 그게 아니라면 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관한 생각들을 하고 싶었다.


 아니, 삶이 정윤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정윤은 다가올 삶을 맞이해야 했다. 정윤은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살 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저 그렇게 살게 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샛별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앉은자리를 밝힐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나, 자평했다.


 시드니에서 내린 정윤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반대방향으로 오랫동안 걸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등지고 걸었다. 본다이 비치를 등지고 걸었다. 여행 가방 하나를 덜컹거리며 걸으니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정윤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정윤이 호주행을 선택한 건 순전히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정윤의 대학교 앞 카페에는 미국 출신 남자와 한국인 여자가 운영하는 독특한 카페가 있었다. 미국인 남자는 톱과 망치를 가져다가 목재를 자르고 다듬어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다. 가게는 투박함이 매력이 되어 세 칸 남짓한 테이블이 매일 만석이었다. 한국인 아내는 토핑이 가득한 막 썰어 담은 치즈 케이크와 맥주처럼 거품이 넘쳐흐르는 독특한 커피를 세트메뉴로 만들어 팔았는데 정윤은 두 사람의 특별한 삶의 방식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정윤을 사로잡았던 건 두 사람이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찍은 즉석 사진의 전시였다. 두 사람이 혹시 뱀파이어는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많은 곳을 다닌 흔적들이 쌓여 있었다. 정윤은 본능적으로 이 카페도 머지않아 사라지겠구나 예상했다. 두 사람은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이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 어디라도 가서 거기서 또 나무를 깎아 집을 만들고 구하기 쉬운 식자재로 가정식을 만들고 그것을 재료 삼아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정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러웠지만 동경하는 대신 탐닉하듯 관찰했다.


 사진엔 누구라도 알만 한 여행지와 신선한 충격을 주는 낯선 여행지들이 교차했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잔디밭에서, 홍콩 침사추이의 야경, 멀리 도쿄 타워를 바라보며, 호이안 여행 중 침수되었던 날, 필리핀 바기오의 한 골목에서, 마드리드의 어느 목욕탕 입구. 사진마다 간단한 설명들이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 정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바다 멀리 점처럼 보이는 고래들이었다. 코프스 하버의 멀리 보이는 고래들. 자세히 들여다본 사진 속엔 고래들이 물기둥을 뿜으며 유영하고 있었다.


 정윤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걸 보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인간이 만든 도로처럼 길이 나있는 것도 아닌데 줄을 지어 길을 찾아가는 새들을 보고 있으면 해방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꼈다.

 돌고래들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바다의 풍경도 정윤에게 그와 유사한 충만감을 안겨주었다. 정윤은 뛰어들고 싶었다. 날아가고도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라는 것을 가진 자의 여유가 미치도록 탐났다. 그보다,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충실한 그들의 삶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리하여 정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코프스 하버라는 이름만을 들고 모험에 나선 것이다.


 시드니의 중앙역에 한참 동안이나 앉아있던 정윤은 마음을 정한 듯 코프스 하버 행 티켓 한 장과 물 한 병을 사들고 기차에 올랐다.


 평일 오전이라 기차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화장실과 가까운 입구에는 한국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정윤은 반가운 마음에 하마터면 말을 걸 뻔했다. 남자가 중간에 내리지 않는다면, 코프스 하버까지 함께 간다면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리라 다짐했고 그런 자신의 담대함이 놀라웠다. 남자도 정윤을 의식하듯 정윤이 펴놓은 노트북을 드문드문 쳐다보았다.  


 9시간이라는 시간은 놀란만큼 지루했다. 처음에 정윤은 펼쳐진 초원과 이름 모를 동물들이 뛰어노는 것,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맥도널드의 로고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미리 저장해 온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기차 내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쳤지만 아직 네 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남자가 다가온 것은 그즈음이었다. 한국인이면 동행해도 되겠느냐고 물은 남자는 정윤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짐을 모두 챙겨 와 옆자리를 차지했다.

 남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를 제작하느라 아직 군대에 가지 못했다고도 했다. 남자의 목에는 전문가용 카메라가 걸려있었고 정윤과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종종 창 밖의 풍경들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남자는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안다고 했다. 남자는 정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가보지 않은 나라가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마치 정윤의 약점을 아는 것 같았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 완벽한 존재에 대한 갈망, 타인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정윤의 태도를 간파한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그렇게 정윤을 사로잡았고 코프스 하버역에서 내릴 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만용이었다. 정윤은 두려운 설렘을 느끼며 코프스 하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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