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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문동 Aug 12. 2024

진우

 진우는 남자의 친구였다.


 정윤이 남자와 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동안 먼저 도착해 있던 진우는 집을 알아보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먹거리와 살림들을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정윤은 일을 할 수 없는 비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을 하러 간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집에 있었다. 모르는 길을 산책하며 거리의 이름들을 기억했다. 월요일이면 10불에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펍에 가기 위해 주말이 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정윤은 고래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코프스 하버에 온 이유가 마치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에는 진우와 남자 말고도 여러 명의 한국인들이 더 있었는데 대부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왔으며 나이는 이십 대 초반부터 삼 심대 초반까지 분포되어 있었고 정윤은 평균의 나이였다.

 그들은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청소를 하고 함께 잠에 들었다. 7시에 각자의 농장으로 출근해서 4시에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매점은 5시에 문을 닫았기에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자마자 일행들은 모두 매점으로 뛰어갔다. 


 정윤은 가만히 마당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들이 뛰면 함께 뛰었다. 남자의 손을 잡고 뛰다가 숨이 차서 뒤쳐지면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늦으면 다 내 거,라고 소리쳤다. 그러면 정윤은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마지막 힘을 내어 간신히 남자를 따라잡곤 했다.
  

 농장의 냄새와 땀 냄새가 어우러지고 거뭇한 자국이 덧입혀진 작업복의 주머니에서 저마다 한주먹의 블루베리를 꺼내 정윤에게 몰아주었다. 정윤은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벗어 블루베리를 모아 담으며 잼을 만들어주겠다며 웃었다. 매점에 가면 대용량의 설탕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윤은 후에 젊음이라고 하면 언제나 이 장면을 떠올렸다.
 

 하늘은 석양을 준비하고 있었고 매점 주인은 마지막으로 남은 감자와 생선들을 모두 털어 넣어 튀기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매점 주인의 남편이 직접 잡은 생물로 만든 생선 튀김이라고 했다. 정윤은 생선을 특별히 찾아먹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집의 피시 앤 칩스에는 이후로 다시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 손에는 튀김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한 손엔 맥주나 콜라 같은 것들을 들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벤치에 앉아 이전의 삶에 대하여 이후의 삶에 대하여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말하는 걸 보며 정윤은 세상엔 참 많은 색깔의 삶이 있구나, 알게 되었다.
 

 누구는 일본에서 요리사를 하다가 왔다고 했고 누구는 대학원에서 로봇을 만들다 왔다 했다. 누구는 멜버른으로 커피를 배우러 갈 거라고 했고 누구는 산호초를 보러 북쪽으로 갈 거라고 했다. 얼굴이 말개서 자꾸 눈길이 가던 서안이라는 여자애는 대학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하고 한국에서 요가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했다. 요가를 배우던 회원의 남자친구가 서안을 끈질기게 스토킹 하는 바람에 결국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에 남자는 서안을 바라보았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던 정윤은 바다 한가운데로 눈길을 돌렸다. 어둑해진 바다엔 조업을 나가는 배 한 척 없이 작은 파도들이 잔잔하게 철썩거렸다. 고요한 바다가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정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윤이 코프스 하버에 온 이유……. 바다엔 고래의 흔적이 없었다. 정윤의 마음에서도 고래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정윤이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윤은 지금 고래들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어 고래를 부르고 싶었다. 고래야, 고래야 부르다가 여기 있다 공명하는 소리에 몸을 띄워 하늘을 날고 싶었다. 하늘을 날다가 새들을 만나면 누가 길을 알려준 거냐고, 하늘을 나는 게 겁나지는 않았냐고, 날고 싶지 않을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정윤을 바라보는 진우를 그때의 정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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