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하여
유독 그런 날이 있다. 평소 같으면 무덤덤하게 지나갔을 일인데 순간적으로 예민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보통 그럴 때는 평소 같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다. 잠이 유독 오지 않는 날, 시곗바늘 소리는 더 크게 느껴지고 이웃집의 층간소음도 더욱 예민하게 느껴진다. 흰 옷을 입은 날 외식메뉴를 고르기는 더 고민스러워진다. 발견하지 못했으면 몰랐을 텐데 눈앞에 대화하는 사람의 코에 삐져나온 코털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그 코털로 시선이 옮겨진다.
호흡, 살기 위해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 생각하다 보면 멈칫 숨을 참거나 갑자기 숨 쉬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게 된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쉬었는데 숨을 쉰다는 것에 대해 의식을 하는 순간 내가 어떻게 숨을 쉰다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일상에서 무언가 당연한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그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라섹수술을 했다. 벌써 라섹수술을 한지도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라섹수술을 하고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사라진 당연한 것은 '눈 비비기'다. 눈을 종종 문질 거리며 비볐던 것 같다. 그러면 괜히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라섹수술을 받으면서 눈에 관심도 많아졌고 눈을 비비는 것이 각막에 어떤 손상을 주는지 알게 되고 난 후 의식적으로 눈 비비기는 피하게 됐다. 잠결에 눈을 비비다가 화들짝 놀라 깬 적도 있다. 무언가를 의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것 일지도 모르겠다.
6월, 작년 6월에 나는 허리 디스크로 인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 문장을 적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입원 치료를 받았고, 디스크 신경 쪽 시술도 받았다. 입원을 마치고 퇴원한 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다리를 꼬는 행위'이다. 다리를 꼬는 행위 자체가 허리에 큰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허리 디스크로 인해 곤란을 겪고 나서야 그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괜히 주변 사람들이 다리를 꼬고 있으면 그 꼬고 있는 다리가 신경 쓰인다. 저렇게 다리 꼬면 디스크가 고통받을 텐데... 물론 오지랖이 그 정도로 넓지는 않아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냥 신경이 쓰인다. 내가 디스크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을 때 내 MRI를 보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한국인들의 많은 허리가 사실은 이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앉아서 일하고, 앉아서 오랜 시간 공부했던 착실한 사람일수록 허리가 이런 상태라고 말했다. 착실한 그대들이여 허리를 펴세요.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쓰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착실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호흡이라는 두 글자에서 허리를 펴라는 잔소리로 의식의 흐름이 이어졌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은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내가 작년부터 지양하려고 하는 표현은 '그 사람이 타고난 것'에 대한 칭찬이다. 말을 조금만 바꾸면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예쁘다.'라는 말 대신에 '오늘 머리 스타일 잘 어울려요. 머리가 예쁘게 말랐어요.'라는 말은 어떨까? '오늘 옷이랑 분위기가 잘 맞아요.'라는 형태의 칭찬, 적어도 그 사람은 머리를 하느라 옷을 고르느라 노력은 했을 테니.
과거에 예쁘다, 잘생겼다처럼 외모에 대한 칭찬은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칭찬조차도 평가라고 비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분위기, 그 사람의 노력, 그 사람의 변화를 칭찬하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단 한 명이라도 이제부터 타인에 대한 칭찬을 하기 전 곱씹어본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끝으로 여러분, 허리 펴세요.
타고난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분위기,
그 사람의 노력,
그 사람의 변화를
칭찬하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