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향

향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

by Dodam Byul

이번 글쓰기 모임 주제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향'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공간 안에도 캔들워머에서 '바하마 브리즈'향이 퍼져 나오고 있고, 공간 고유의 디퓨저가 놓여있다. 생각해보면 향이라는 것에 민감하기도 하고, 기분 전환을 할 때 제일 쉬운 방법으로 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 집 고유의 향, 집 냄새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것이 기억난다. 우리의 감각 중 가장 빨리 느끼는 것은 '후각'이고, 단 금방 적응된다는 성질도 갖는다고 했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나는 냄새를 먼저 느낀다. 어떤 공간에서는 나무 냄새를 어떤 공간에서는 음식 냄새를 어떤 공간에서는 섬유 유연제가 주는 냄새를 먼저 느끼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종종 수정과를 만들었다. 그러면 집에서 달큼한 계피향이 퍼졌다. 그렇게 수정과를 만드는 날 기분이 좋았다. 막상 수정과를 마시면 쌉싸름한 맛에 찌르르하면서도 향이 좋아 수정과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니 더 자주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아파트가 아닌 옥상이 있는 집에서 13살까지 살았다. 옥상이 있는 집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있는 것은 바로 햇볕 냄새 때문이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이불과 베개를 옥상에 널었다. 굳이 세탁을 하지 않아도 이불과 배게를 햇볕에 말렸다. 그리고 나면 밤에 누웠을 때 이불과 배게에서 풍기는 고소한 햇볕 냄새가 있었다. 나는 이 냄새가 좋아 온 가족의 이불과 배게를 볕이 좋은 날 옥상에 널었다.


독립해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세제와 섬유유연제의 향, 그리고 디퓨저를 통해 공간에 따라 향이 달라질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인상 깊은 향을 맡으면 그 향을 내 공간에도 놓고 싶어 진다. 한동안 '우드'향에 빠져 거실 공간과 업무 공간을 우드 향이 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묘하게 풍기는 숲 속 냄새가 참 좋다.


#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

커피를 향으로 먼저 접했다. 인스턴트커피와는 다른 에스프레소 머신이 돌아갈 때, 커피를 볶을 때, 핸드드립 과정에서 향이 뿜어져 나올 때 향으로 먼저 커피를 즐기고 마시는 느낌이 좋다. 향이 강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면 머리카락에서도 커피 향이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향을 먼저 마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커피 향이 내 주변과 공간에서 퍼질 때 더 기분이 좋고 행복해진다. 집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나서 생긴 커피 찌꺼기를 잘 말려 냉장고 안에 탈취제로 쓸 때도 기분이 좋다.


# 여행, 그 공간을 향으로 기억하는 방법

한 배우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사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여행을 갈 때 면세점에서 익숙한 향수 브랜드의 써보고 싶었던 향을 구입해서 떠난다. 향수 구입 제한이 있으니 일부러 하나만 고른다. 그리고 내내 그 향을 여행기간 동안 쓴다. 그리고 돌아오면 그 향을 쓸 때 그 나라, 그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 내가 향수를 쓰게 된 건, 대학생 때. 친구가 향수를 고르러 갈 때 따라갔다가 뿌려보고 무심결에 그날 저녁 나에게서 나는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진 경험을 한 뒤, 내가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향수를 구입했다. 지금은 향수 대신 바디 미스트와 바디로션을 조합하는 날도 있다. 향은 나를 위한 선물처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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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은 내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에는 수 없이 많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식 등 그중에서 하나는 향이기도 하다.

집에 꽃을 사서 화병에 꽂아놓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눈을 떠서 거실로 나왔을 때 식탁 위에 꽃이 보이면 기분이 좋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꽃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 내 공간에 꽃이 있는 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 중 하나다. 특히 프리지어, 프리지어 때문에 노란색을 좋아하는 건지 노란색을 좋아해서 프리지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가전은 세탁기와 건조기다. 이불을 잘 빨아 건조기에 돌리고 포근하게 덮는 그 밤의 편안함이 좋다. 오늘 같은 휴일, 나는 이불을 빨아 말린다. 그리고 더욱더 포근한 밤, 포근한 잠자리를 만든다. 세상에 고단한 일들이 끝나고 나면 누워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리고 기왕이면 좋은 향으로 편안한 하루의 끝을 보내고 싶어서.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떤 향으로 시작해 어떤 향으로 끝났나요? 기왕이면 냄새라는 말보다 향이라는 말로 기억나는 하루였길 바라요. 아이유의 노래 가사는 좋은 꿈이길 바라요로 끝나지만, 제 글은 좋은 향과 함께이길 바라요로 끝나고 싶습니다. 당신의 밤이 좋은 향과 함께이길 바랍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떤 향으로 시작해
어떤 향으로 끝났나요?
기왕이면 냄새라는 말보다
향이라는 말로
기억나는 하루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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