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생명의 테제

안정적인 불안정을 유지하려는 정보처리장치의 진화

by 미친생각

가격에 에너지와 리스크가 포함돼 있다고 가정하면,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생명이라는 정보처리장치는 왜 굳이 다른 정보처리장치를 먹어야 했을까? 그것은 행동의 비용을 높이고, 실패 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를 동반하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이 방식은 생명의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돼 왔다. 이 오래된 태제에는 물리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봤듯이 에너지는 불안정한 상태 변화의 가능성으로 관측된다. 에너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성이 필요하며, 전환 가능성이 제거된 에너지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다시 말해,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불안정성과 함께 존재한다. 정보처리장치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보처리장치는 불안정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안정된 상태에서는 입력과 출력, 연산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속적인 정보처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불안정이 필요하다.


이 구조는 번개라는 보편적인 자연 현상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번개는 대체로 적란운이 형성된 날 발생한다. 적란운은 수분 함량이 높고 수직으로 크게 발달한 구름으로, 그 내부에서는 강한 상승기류와 하강기류가 동시에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수분 입자와 얼음 결정 등이 충돌하며 전자의 운동성이 증폭되고, 양전하와 음전하의 분리가 누적된다. 그 결과 구름 내부에는 점점 더 큰 전기적 불안정성이 축적된다. 이 전기적 불안정이 안정화되는 방법이 번개인 것이다. 번개는 불안정의 임계점이 낮아질 때까지 반복된다. 한 번의 방전으로 모든 전위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름 내부에서 불안정성이 계속 생성되는 한, 방전은 여러 차례 이어진다. 번개는 불안정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성이 지속적으로 축적되기 때문에 반복된다.


정보처리장치의 작동도 번개치는 적란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차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내부에 불안정한 상태, 즉 에너지가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배터리라는 불안정 저장 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터리 화재는 이 불안정성이 통제되지 못하고 급격히 해소되는 사건이다. 번개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동차는 이 불안정성을 효율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주행하고, 충돌을 감지하며, 센서를 작동시키고, 음악을 재생한다. 생명 역시 동일한 구조를 따른다. 생명이 주위를 인식하고, 소리를 듣고, 움직이고, 사냥할 수 있는 이유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섭취하고 이를 신체 내부에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성으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정성을 섭취하고 저장한다. 여기서 잔혹해 보이는 결론이 등장한다.


지구 환경에서 생명이 접근 가능하고 구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불안정성은 대부분 다른 생명체에 농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용암이나 고온의 지열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내포한 물질도 존재하지만, 아미노산 기반 구조로 구성된 생명체가 이를 섭취하거나 안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미노산 기반의 구조는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변형과 붕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명은 에너지를 획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경로를 반복적으로 선택해왔다. 아미노산 기반 정보처리장치가 펼쳐진 지구라는 환경에서는, 이는 물리적으로 합당한 선택이었다.


물론 식물처럼 태양이라는 불안정성을 직접 활용하는 평화로워 보이는 경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특정 환경에서 우연히 잔존하고 확산된 경로에 가깝다. 생명의 정보는 DNA와 RNA에 저장돼 있으며, 이 정보는 의도 없이 변이되고 잔존해왔다. 목적이나 계획이 아니라, 잔존 자체가 지금의 생명을 만들어냈다. 정보의 진화 과정에서 생명이라는 정보처리장치가 등장했고, 정보처리는 에너지라는 불안정성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 불안정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을 포식하는 방식이 발생했다. 진화가 진행되면서 방어 수단과 공격 수단은 함께 발달했고, 에너지를 획득하기 위한 최저 비용 역시 끊임없이 변해왔다. 생명의 연산 구조는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향으로 조정돼 왔다. 사료에 익숙해진 동물이 굳이 사냥을 선호하지 않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생명이 다른 생명을 포식해온 잔혹한 태제의 해답은 단순하다. 생명은 불안정한 존재이며, 그 불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불안정을 충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명이 다른 생명을 포식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점차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효율을 향해 변화하고 있다. 언젠가 포식은 잔혹한 전래동화로 남을지도 모른다. 화폐와 가격 역시, 그 중간 단계의 전래동화가 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