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드디어 헝가리 공항에 도착했다. 도대체 몇 시간 만에 땅을 밟은 걸까… 기지개를 한 번 쫙 켜고, 서둘러 카운터로 가 SUV를 렌트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남편이 졸릴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나도 국제면허를 발급해 갔다. 운전 경력은 오래됐지만, 평소 겁이 많은 터라 낯선 타지에서의 운전은 처음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용기 내 보기로 했다.
헝가리를 출발해 국경 구분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슬로베니아에 들어갈 때만 여권 검사를 철저히 했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갈 때는 국경 근처의 편의점에서 비용을 지불했다. 그 외에는 자연스럽게 나라가 넘어갔지만, 신기하게도 도로의 상태나 운전 스타일, 주변 풍경에서 나라가 바뀌었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자그레브는 우리나라 절반 정도의 크기인 크로아티아에서도 가장 큰 도시이다. 자그레브의 첫인상은 중세와 현대적인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달까? 구시가지의 오래된 건축물과 좁은 골목길을 거닐다 보니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3시면 문을 닫는 돌라치시장을 들리기 위해 부랴부랴 구글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길게 늘어진 빨간 파라솔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구나!' 우리네 꽃시장처럼 꽃이 종류별로 큰 물통에 담겨있었다. 색색깔의 이색적인 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탄성이 나왔고, 눈을 뗄 수 없었다. 구수한 느낌의 아주머니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꽃가지를 정리해 신문지로 휘리릭 감싸는 모습마저 멋있어 보였다.
몇 계단을 위쪽으로 올라가니 이번에는 빨간 파라솔밑으로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과일과 푸른 채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당장 밭에서 캐온 작물들이란 걸 보여주는 듯, 과일을 저울에 담는 농사꾼의 손끝이 흙으로 시꺼멓다. 덤으로 작은놈들을 더 얹어주는 건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한 정서인 건지 '아고 우린 많이 못 먹는데..'싶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에 연신 미소로 답했다.
노란 귤과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 보라색 프룬을 저울에 올려 가격을 쟀다. 가격이 정말 저렴해서동전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토마토 가격이 치솟았을 때라사과와 토마토,천혜향 같은 귤을 한가득 샀고, 바비큐용 가지와 호박, 감자도 잔뜩 담았다.
자그레브의 돌라치 시장에서 과일과 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불과 몇 시간 전 이곳에 도착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시장에서 산 귤을 차 안에서 엄청 맛있게 까먹었는데, 나중에 과육 속에서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걸 보고는 기겁을 했던 기억은웃고 떠들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가 됐다. 집에 오자마자 가족 모두 구충제를 먹으며 그때를 추억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자그레브의 돌라치 시장은 그야말로 현지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시장을 거닐며 정겨웠고, 따뜻한 마음으로 여행 첫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그레브 돌라치 시장(평일 06:30~3:00, 일요일 ~1:00까지)
높은 첨탑의 자그레브 대성당과 반 옐라치치 광장을 지나 잠시 쉴 겸 평점 좋고 맛도 훌륭했던 피자집에 들렀다. 가족단위로 온 손님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조차도 개인당 피자 한판씩을 먹고 있는 걸 보니 '와우~!' 이들에겐 앞접시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듯했다. 우리 입맛에는 다소 짰던 피자와 파스타를 맛나게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린 또 서둘러 출발을 했다.
요정들이 사는 동화마을'라스토케'
최종 목적지인 플리트비체로 들어 서기 전 근처 가까운 곳에 '라스토케'라는 예쁜 동화 마을이 있다. 오래전 <꽃보다 누나>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마을인데, 크로아티아에서 꼭 들리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시간이 빠듯해 그냥 지나칠까 여러 번 고민하다 언제 와보겠나 싶어 발길을 잠시 멈추었다.
'어쩜 마을이 이렇게 조용하고 예쁠까?'정말 물의 요정이 살 것만 같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시간 여유만 있었다면,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 커피 한잔과 송어요리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고, 이미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 넘어간 시점. 첫날이라 조금만 더 지나면 다들 피곤이 몰려올 터.. 더 이상은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눈과 맘속에 꼭꼭 눌러 담은 뒤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