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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한대로 Dec 02. 2024

석양에 물든 고대의 성벽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따라 흐르는 노란 불빛..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영원의 순간을 품고 있었다.


수백 년 전 멈춰버린 두브로브니크가  노란 불빛으로 따스해지는 시간. 황혼이 내려앉아 하늘을 물들여 가는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반들반들 돌바닥을 따라 걷는 발걸음에 도시의 수백 년이 스쳐 지나가고, 노란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구시가지의 길목을 비추고 거리마다 남아 있는 옛 자취들..

빛의 번짐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멈춰버린 시간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여행을 떠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어릴 적, 그 아무리 깜깜한 새벽에"얘들아 출발해야지~" 하고 귓가에 대고 속삭이면,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전날 싸놓은 쪼꼬만 배낭부터 챙겨 메곤 했다.


 여행은 단지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건 늘 설렐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첫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장거리 여행은 더 이상 힘들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갈 때마다 "얘들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여행계획을 세우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점점 '넷이 함께하는 여행은 이젠 몇 번 안 남았겠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더욱이 이번 여행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는 친구들이랑 올 텐데, 아니 혼자 배낭여행을 올지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에 하나부터 열까지 독립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린 늘 가족회의를 통해 여행지를 선택하는데, 여행 기간과 비용, 계절등을 고려하고 꼭 가보고 싶은 나라에 대해서 각자 조사를 한 후 의견을 나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이번 여행은 9박 10일 동유럽이었다.

헝가리-크로아티아(플리트비체, 두브로브니크)-슬로베니아(블레드 호수)-오스트리아(그로스글로크너, 첼암제, 할슈타트, 빈)-헝가리(부다페스트)

막판까지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그로스글로크너를 두고 고민했지만, 이동 시간을 고려해 결국 프라하는 제외하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면서는 발길 닿는 대로 멈추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 숙소도 미리 정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느낌 닿는 대로 바로 결정하기로 했다. 모든 일정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숙소나 방문할 명소, 맛집까지 아이들의 손에 맡겨 보기로 했다.


조금의 우려도 없이,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찾아냈다. 나이 든 엄마 아빠보다 Z세대인 아이들의 검색 속도와 정보력은 실로 대단했다. 아이들은 구글 지도를 활용해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별점과 후기를 살펴보며 맛집, 숙소, 핫한 명소를 척척 찾아냈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대로 가족들이 따르다 보니, 아이들은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했고, 그만큼 이번 여행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유능감을 한껏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추천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가격, 뷰, 맛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발견한 숨은 보석 같은 숙소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주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여행 일정을 수정하고 바꿔가며,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에 대한 내 답은, 바로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추억과 다양한 경험들이 아닐까 싶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엄마 아빠와 함께 한강 길을 달리던 추억은, 다섯 살 때라 가능했던 순수한 순간이었다.

캠핑장에서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하늘의 별을 보던 기억이나,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순간은 사춘기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라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이었다.

서핑보드에 처음 올라섰을 때, 스키를 처음 타고 정상에서 내려왔을 때의 그 벅찬 기쁨도 마찬가지로,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그 감동은 결코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지 모른.


이런 경험들이 든든한 힘이 되어,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눈을 가지고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 준, 뜻깊은 여정이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급변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것들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신나게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돈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 신나는 일이 넘쳐나는 아이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커온 시기마다 우리 가족에게 남겨진 소중한 추억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남길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소중한 추억을 또 한 자락 기록해 본다.


마지막으로, 긴 여행 동안 진정으로 즐겁게 여행해 준 아이들도 고맙고, 하루 기본 5시간 이상, 3000km의 길을 위험한 밤길, 안개길, 절벽길까지 무사히 운전해 준 남편에게도 마음 깊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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