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트비체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너무 늦은 밤이었다. 숲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키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좁은 도로는 자동차 불빛에 의해 겨우 한 치 앞만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안개가 많이 끼는 거지? ' 숲은 이미 깜깜하고, 안개는 자욱해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동화마을 라스토케를 안 들렀어야 했나? 사진을 좀 덜 찍고 빨리 출발했어야 했나?' 잠시 후회가 들었지만, 아무 말 없이 달리는 남편은 이미 정신이 홀린 듯, 본능적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차 안은 적막했고, 숨이 멈출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헉' 소리라도 지를까 입을 틀어막은 채, 우리는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는 길을 한줄기 불빛에 의지해 뚫어져라 시선을 쫒을 뿐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에, 간혹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우리는 나무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깜깜한 산길을 오를수록, “엄마! 옆이 낭떠러지야!”라는 딸내미의 외침에 절로 몸이 오싹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갯속에서, 남편은 무섭지도 않은지 구불구불 커브길을 잘만 달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달렸다나… 나는 계속해서 "자갸~ 속도 좀 줄이자! 속도 줄여~~~"라고 아이들이 들을까 중얼거리듯 남편 허벅지를 꾸욱 누르고 있었다.
플리트비체 밤 VS 아침
한참을 그렇게 고불고불한 안개길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달렸다. 앞에 차가 한 대라도 있으면 그게 그렇게 안심이 될 수 없었다. "왠지 앞차, 여기 사람인 거 같아!" 남편이 말했다. 뭔가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는 듯한 차의 움직임을 보며 말이다. 하지만 그 차도 잠시 후 다른 샛길로 사라지고, 다시 우리 차만 고요한 밤을 가르고 있었다. 그렇게 20분을 더 달리자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달했다며 차를 멈췄다. "얘들아! 다 왔나 봐, 여기래!" 드디어 도착을 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깜깜한 숲 속,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우리는 핸드폰 라이트를 비추며, 예약한 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통나무집 담벼락을 훑어보았다. 나뭇잎들이 무성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며 우릴 반겨주고 있었다.
그때 아들이 먼저 돌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외쳤다. "엄마! 이 집 맞는 거 같아요!" 공항에서 바로 온터라 큰 캐리어 밑 어딘가에 껴놓은 우산은 도저히 꺼낼 수도 없었다. 우리는 겉옷을 뒤집어쓴 채 다 함께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이 집이 맞는 것 같았다. 그다음 우린 열쇠를 찾아야만 했다.
'이게 무슨 오밤중에 방탈출 게임도 아니고… 열쇠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집주인에게 받은 문자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이번엔 대문 주변을 샅샅이 훑어봤다. "엄마! 이거!" 작은 통을 발견했다. 역시 방탈출 게임을 많이 해본 덕분인가. "우와~ 잘했다. 잘했어!"
'와, 에어비앤비가 이런 거구나!'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 커서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건데, 어마무시하게 안개 낀 숲길을 뚫고 와야 한다는 건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었다. 열쇠를 돌리니 문이 열렸다. 그제야 툭 하니 긴장이 풀리고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여행 첫날부터 아주 다이내믹했던 하루였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우리만의 따스하고 아늑한 통나무집에 앉아 있으니 플리트비체 숲 속에 들어와 있음이 실감되었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 오히려 깜깜하고 안개 자욱했던 숲길을 달린 오늘 하루는 우리의 여행 첫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고, 긴장했던 맘은 어느새 사라지고 뭔가 모를 짜릿한 성취감이 느껴졌던 건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