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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신감은 '나를 들여다보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by 생각한대로


자신감의 진짜 얼굴 : 나를 들여다보는 용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키는 방어하는 말들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늘 선택을 앞두고 "전 다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웬만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무색무취의 사람이라서는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을 드러냈다가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사람과의 너무 가까운 거리가 부담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나중에 ‘괜히 그렇게 말했나’ 후회하는 일이 싫어서, 혹은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대화를 하다 보면 자주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왜일까? 그의 무의식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상대방이 90% 정도 맞게 이해해도, 완벽하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불편해지는 과도한 정확성의 욕구가 있었을까?
혹은, 자신의 의견이 왜곡되거나 오해받는 것을 견딜 수 없는 방어심리였을까?

어떤 마음이었든, 분명한 건 누구에게나 본인도 모르게 작동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나 말버릇이 있다는 사실이다.


방어기제란 ‘심리적 통증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자동 반응’이다.
과거의 상처, 무시당했던 기억, 반복된 좌절이 있을수록, 뇌는 비슷한 고통을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 피하려는 반응이 말버릇과 태도로 드러난다.


"비난은 자신의 결점을 감추기 위한 방어적 수단일 수 있다." -니체-

“거긴 별로던데? 음식도 맛없었어.”
“그 전시회 가지 마. 진짜 별로였어.”
“오늘 스타일이 왜 그래?”

이처럼 말끝마다 습관처럼 비난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대화가 아니라 평가처럼 들리고, 조언이라기보다 불편한 지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공격적인 말투나 날카로운 표현 뒤에는 그 사람만의 불안과 불신, 그리고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툰 마음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게 방어하듯 말하게 되고,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무심히 상처 주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말투가 거칠거나 비난이 잦다면, 그 안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나 다치지 않기 위한 방어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말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말하는 태도는 결국, 우리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방어기제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며 살아간다.

낯선 자리에 나가면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괜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반대로 팔짱을 끼고 등을 기대며 관심 없는 척 행동할 때가 있다. 겉보기엔 여유로운 척하지만 사실은 긴장감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과하게 흥분한 모습이나 건방져 보이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처럼 그런 행동을 반복하곤 한다.

불편한 상황이 닥치면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먼저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 이면엔 ‘내가 상처받기 전에 먼저 밀어내겠다’는 방어심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사실은…”, “글쎄요”, “농담이야”, “그냥 그런 거지 뭐”, “난 원래 기대도 안 했어.”
이런 가벼운 말들 속에도 진짜 속마음을 감추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대를 낮추거나, 자신의 의견에 대한 거절이나 반대를 피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일 수 있다.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학씨 아저씨'도 그랬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화를 내고 거친 말로 감정을 드러낸다. 결국 그의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만 남는다. 누구도 그런 방식의 표현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쏟아내며, 상대의 말을 끊거나 듣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혹시 침묵이 찾아오면 불안해지기 때문일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일까?
과거에 무시당한 경험이 있어,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말에 익숙해져 타인의 말은 들을 줄 모르게 된 걸까?

하지만 그런 말하는 태도는 결국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말은 단순히 생각을 전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 사람의 감정 상태와 관계의 태도, 자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창이다.

"솔직히 말하면…"을 자주 붙이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의심받을까 봐 진정성을 강조하려는 사람일 수 있다.
"저는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부담이 될까 봐 미리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건 아니지”, “내가 아는데, 진짜 별로야”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실은 내면의 불안을 단호함으로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진짜 변화는 스스로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왜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는지, 왜 따뜻한 마음을 차가운 말로 전달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말의 표면을 넘어서 내 마음의 뿌리를 마주할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단어는 껍질일 뿐, 진짜 열매는 마음에서 자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표면적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감정과 경험이 숨어 있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불안하면 말이 빨라지고, 자신이 없으면 말끝을 흐린다.
말하는 방식은 생각의 구조이자, 감정의 지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중요한 건 단어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말투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다듬는 일'이 아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그 말의 이면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나는 왜 저런 말하는 태도를 가졌을까?"

"나는 왜 자꾸 스스로를 낮추는 말투를 쓰지?"

"나는 왜 자꾸 설명을 덧붙이려 하는 걸까?"

이 질문들은 결국 '내가 나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말은 나를 숨기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드러낸다.
무심코 흘린 한마디에 진짜 내가 담겨 있다.
단어를 고치기 전에 마음을 들여다보라.
진짜 변화는 표현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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