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친구들과 교복치마를 휘날리며 신나게 하교하던 중, 아파트단지 화단을 빙 에워싸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야~ 무슨 일 있나 봐. 무슨 일이지?.’ 궁금증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초록초록 잔디에 덮혀진 흰 천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게 나쁜 일임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 듯했다. 눈을 피하려는데, 끝자락 피가 묻어있는 신발을 보고야 말았다. 친구와 난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틀어막고 잰걸음으로 뒤로 빠져나왔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생이래요. ’ ‘예전부터 맨날 엄마랑 싸우고 큰소리가 많이 났었대요.'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사연이 들려왔다. 아직도 가끔은 아파트 그 단지 앞을 지날 때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다시 돌아온 이곳. 올해만 해도 인근 중학교에서 드러난 자살만 3번째다. 이런 일일수록 다들 말을 아낀다. 누군가에게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너무 큰 아픔인걸 알기에 또한 아무리 생면부지의 아이라 해도 그 순간 그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같은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그 슬픔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슬픈 아이들의 마음은 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왜 어린 나이에 이 아이들이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 어른이라면 고민은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동네 학원가 거리에는 희한한 게 있다.
처음 이곳이 생겼을 땐 이게 뭘 하는 공간인가 싶었다. 강남구가 7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청소년 쉼터'.. 스트레스 프리존이란다. 음악을 듣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는'사운드 테라피존', 실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피트니스 테라피존',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리프레시 테라피존' 등 3가지 테마로 11군데 정도가 한티역 학원가라인으로 줄지어 있다. 지나가며 볼 때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늘 텅 비어있는 이곳.. 한번 들어가려면 구청에서 출입인증서를 대면으로 받아야만 하니 이런 번거로움에 누가 이곳을 이용하겠는가.. '전시행정'이네, '사람도 없는데 에어컨을 왜 트냐..' 말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제는 출입증을 QR로 간편하게 발급받을 수 있게 개선해 놨다니 조금은 이용률이 올라갈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스트레스 프리존이 아이들에게 도움은 되었을까?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조금은 줄어들까? 아니라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안다. 뭔가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참 갈길이 멀다.
뉴스 속보> 2028 대입 개편안 발표.
속보... 속보가 뜬 이날은 학원가에서도 덩달아 긴급 설명회 영상을 제작해 발표하고, 앞다투어 유튜브에서도 각 컨설팅 소장님들이 생방송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현 중3은 재수는 안됩니다.' , '중2는 계 탔네요.' , '9등급제가 5등급제로 바뀌니 내신변별이 약해집니다.'... 등등. 그렇다면 바뀐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조금은 공부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 줄까?
고등 시험기간. 아이들의 긴장도는 최고치에 달한다. '약 먹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시험 시간 아이들 보고 있으면 숨도 못쉬어요.' 한 선생님의 말씀이다. '위장장애', '과민성 대장증후군'정도는 고등아이들의 흔한 증상이고 시험시간 긴장감에 토하는 아이 ,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곧 쓰러질 것 같은 아이, 땀나는 손을 연신 무릎에 닦아내는 아이.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하신다. 한 개만 틀려도 등급이 뒤바뀌니 아이들은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하루하루 속에서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아이는 견디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해맑게 미소짓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싶다.
이 동네 모든 아이들의 눈빛이 생생하게 살아 빛나고, 이웃집에서 고래고래 싸우는 소리가 아닌 행복한 웃음이 들려오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