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공부하는 아이를 데리러 스카 앞 도착. 12시가 되니 아이들 몇몇이 나오기 시작한다. '근데 어랏? 왜 다들 커플로 나오냐ㅡ.ㅡ 이건 뭐지? 와.. 고등땐 정말 연애하면 안 된다던데...' 건물 뒤쪽 주차장에 차를 대니 이곳은 흡연실이 따로 없다 ㅠㅠ 애들이 담벼락 군데군데 뒤돌아 코 박고 연기를 뿜어댄다. 여기 대치동 맞냐고요!!! 이것뿐이랴.. 한티역부터 은마 사거리 라인에는 학원만 많은 게 아니다. PC방도 많고, 노래방, 전자담배 파는 곳까지 유해시설도 즐비하다.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수학 만점자가 전교에 넘쳐나고 1등급은 전교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네다. 하지만,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은근 정말 다양하다.
영재원과 올림피아드 코스를 거치는 아이들.
이 동네에는 어릴 적부터 영재원을 들락거리고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초등학교 때 이미 대학에서나 배울법한 수과학 선행을 끝내는 아이들이 많다. 도저히 저 나이에 이 진도가 가능할까 싶은 수준이다. 대체로 이 아이들은 고등입학 전 이미 영과고로 많이들 빠진다. 하지만 그중 또 소수는 영재고를 떨어지고 혹은 일반 자사고 전교권을 노리고 전략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대부분 돌* , 막*, 원**, 이* 을 거쳐 고등에서는 시*** 공쌤, 대* 박쌤, 깊* 1레벨반 등등 각 학원의 탑반에 들어가는 아이들이다. 올해 삼성 이부진 아들이 대* 박쌤에게 수업을 받는다는 소문이 들리자 더욱 인기가 높아지기도 했다. 여기서 수업을 받으며 유명 1타 강사를 서브로 부쳤단다. 재벌집 아들이니 가능한 얘기겠다. 이 아이들은 이미 고등 입학 전부터 수능 수학 1등급이 나오는 아이들이다. 이런 넘사벽의 아이들이 대치동에는 각 학교마다 상당수 자리한다. 올해 9모에서 수학 만점자가 모 학교에 100명이 넘게 나왔다니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수학 선행이 점점 더 빨라지는..
얼마 전 아이 학교 엄마들을 만났다. 그녀들의 수다는 공부에서 공부로 끝났다. "지난번 설명회에서 들으니 고등 가기 전에 미적, 확통까지 끝내고 가야 한다는데, 우리 애는 지금 중2에 수 1밖에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요?" "000는 수학학원을 3개 다닌다잖아. 학원진도 말고 예습학원 하나, 복습학원 하나 이 정도는 기본이래요""과학학원은 어디가 좋아요? 이번에 물 1 끝냈는데, 이제 화 1 시작해 보려고요." "이번 중간고사 국어 문제 너무 하지 않았어요? 애 시험지를 분석해 봤는데, 7번 문항이 헷갈리게 되어있던데요.." "00가 이번에 영어 백점 맞았던데, 내신 어디서 했어요?" 다들 원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공유받기를 원하는 모임. 엄마들의 대화는 끝이 나질 않았다. 이제는 수학 선행이 더 빨라져서 초등 때 수상하 심화까지 끝내는 건 기본 수준이란다. 이게 왜 정상이고 보통은 다 그런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결국 이와 같은 선행에 발맞추지 않으면 점점 이 동네에서 다닐 학원이 없어지고, 뒤로 밀리고 밀려 고등에서 좋은 등급을 받을 수가 없는 구조다. 이 아이들은 어린 시절 어떤 시간을 보내는 걸까? 수학, 영어, 과학, 국어.. 더 나아가서 내신기간이면 사회, 한문까지 학원을 다니는 이 아이들은 도대체 쉴 시간이 있을까? 처음으로 나름 유명하다는 대형 학원에 다니게 되었을 때 10시 수업이 끝나고 나올 때가 된 아이가 나오질 않았다. "엄마 선생님이랑 다 같이 스카로 이동 중이에요. 여기서 클리닉 하고 끝난 대요."" 뭐라고?" 대부분의 유명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옆 건물 개인 사무실로 데려가 클리닉을 따로 진행하신다는 걸 그때사 처음 알았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엄마! 다른 애들은 지금까지 매일 이렇게 수학을 했다는 거네요? " 마주 본 우리의 두 눈은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우리 아이가 콜콜 잠을 잘 동안 대치동의 아이들은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었던 것이다. 지독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치동의 아이들은 충분히 박수받을만하다.
전교 1등 자퇴하다...
얼마 전 중간고사를 앞두고 전교 1등 아이가 자퇴를 했단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머리가 이상해졌단다. 장난이 아니라 심각한 얘기다. 이 안에서 대치동을 바라보니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과한 거짓이 아니다.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가 않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도 무서운데 그게 현실이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들의 공부 스트레스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 수준이다. 시험이 쉬워도 만점자가 30명이 넘게 나와 1등급을 놓치고, 시험이 어려워도 각 과목마다 괴물들이 있어 한두 개만 틀려도 등급이 3~4등급으로 떨어진다. 몇 년 전 시험지 유출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던 숙명여고 같은 경우는 전교생의 대부분이 지독히도 성실한 모범적인 여학생들이라 서로 한 과목씩 등급을 찢어먹다 모두가 다 같이 전사한다 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남자애들은 그냥 '난 정시파야!'라고 속 편한 소리라도 하는데, 여자아이들은 쉽게 놓지도 못하고 그러다 공황장애며 우울증이며 시험기간이면 불안증세에 약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볼링장 가고 PC방 가고 연애하는 고등학생..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러블리하게 연애하는 중고딩도 많고, 맘은 편하지 않겠다만 볼링장, PC방, 노래방을 다니며 노는 아이들도 많다. 이 아이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엄마, 00가 원래는 수학천재였대요. 엄청 수학 잘했는데 지금은 질려서 안 하는 거래요." "00는 내신은 버리고 놀지만, 지금까지 해놓은 게 있어서 모의고사는 잘 봐요. 정시로 대학 갈 거래요."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다. 중학교 때까지 엄마말 잘 듣고 쉴 새 없이 학원 다니며 공부하다 고등 와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시기가 중학교 때 오느냐 고등학교 때 오느냐는 아이마다 다르다. 또한 짧게 방황을 끝내고 정신 차려 주는 아이, 잔잔하고 길게 가는 아이, 대학 가서 방황하는 아이 등등. 아이마다 시기와 정도의 차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 중 가장 안타까운 아이들이 뒤늦게 방황하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초중등시절 열심히 보낸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으니 갑작스러운 모습에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고2, 고3 때라도 정신 차려주면 수능으로 충분히 좋은 대학 갈 수도 있고, 혹 재수 1년이라도 하면 분명 더 잘 갈 수 있다. 어른만큼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솔직히 엄마인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가끔 잔소리를 하더라도 의미 없는 울림일 뿐, 이미 커버린 아이들은 어느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그저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고 아이가 스스로 헤쳐 나올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주는 것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다양한 아이들이 살아가는 대치동.
다른 지역보다 학급 대부분의 아이들이 순수하고 착한것도 사실이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성실한 아이들이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70~80%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난하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애가 별로 공부 쪽이 아닌가 봐요. 그냥 영국유학이나 보냈다가 다시 국내로 편입시킬까 해요." "난 공부 안 해도 돼. 우리 할아버지가 매주 주말마다 놀러 오면 나중에 강남에 있는 건물 나 준대!" 상상도 못 할 부를 지닌 사람들. 반면 아이들의 교육에 자산의 상당부분을 투자하며 빠듯하게 중고등시절을 버텨내고 있는 열성적인 사람들. "어떻게 해요. 올해 들어온 신입생인데, 3학년 오빠랑 사귀다 그랬다네요..." 공부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성폭력으로 인한 자살사건이며 상상도 못할 학교폭력이며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뉴스에 날만한 다양한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밤 12시 . 오늘도 어둑어둑한 은마사거리 횡단보도 앞은 플리스 잠바에 푹 꺼진 눈빛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둘러메고 지나가는 아이들로 불이 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