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무너진다

by 생각한대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

한 아이가 시험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복도로 뛰쳐나가더니 구토를 한다. 시험 시간 내내 억눌려온 긴장과 불안감에 속이 뒤집힌 듯하다.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선생님은 무심하게 아이를 쓱 쳐다보곤 "이젠 괜찮지?" 하신다.

시험이 도대체 뭐라고 이리 긴장을 하는지, 우리 고등학생일 땐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아이들은 훨씬 더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이 나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시험의 압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것일까?


며칠 전, 동네 치과를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집 앞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두 명의 남학생이 프린트를 붙잡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기특한 마음에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같은 층에서 내린 그들은 뚜벅뚜벅 걸어 치과가 아닌 ‘소아청소년정신과’의 투명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나치며 본 그곳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놀라운 건, 그곳에서도 아이들이 프린트를 붙잡고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을 온 것이 아니라 시험장에 와 앉아 있는 듯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 아이들은 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돌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심각성을 왜 외면하고,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기에 지금까지 달려온 선행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과연 자라서 행복할 수 있을지, 정상적인 마음 상태를 지닐 수 있을지 깊은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의 뇌는 이미 망가지고 있다

'7세 고시'라는 말이 한창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역시나 몇 번 기사를 타고 말더니 현실에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할 시간에 발도 닿지 않는 책상에 앉아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앞에 놓인 프린트물을 끄적이고 있다. '이걸 끝내야 집에 갈 수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맞혀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속으로 되뇌며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 선행을 한다. 물리와 화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고, 영재고·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전문학원을 찾아 정해진 루트를 탄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여름, 만 열여섯 살에 불과한 아이들은 첫 번째 과고. 영재고 입시를 치른다.

아이들에게 이 시험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 살아온 16년 중 절반 이상은 사실상 이 목표를 향해 준비해 온 시간이다. 그래서 합격 여부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듯한 무게로 다가온다.


시험을 치르는 교실 풍경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같은 학원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지만, 동시에 경쟁자가 된다. “혹시 나만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다. 여기에 부모의 기대와 압박이 더해지면 그 무게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아이들의 몸은 오래전부터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손톱은 닳아 없어질 듯 물어뜯겨 있고, 초조함에 샤프로 허벅지를 긁는다. 두세 시간의 수면으로 버티는 날이 이어지면서, 마음과 몸은 이미 병들어 있다.


합격 발표가 난 뒤, 또 한 명의 아이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삶인데, 벌써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어떤 아이는 엄마와 다투던 끝에, 20층 거실 창문으로 말릴 틈도 없이 뛰어내렸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한 가족만의 비극일까? 남겨진 아이들에게 그 소식은 섬뜩할 만큼 두렵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던 나와 똑같은 처지의 친구였는데, 그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다. 이런 사건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벼랑 끝인지 적나라하게 확인시킨다. 열여섯 살, 아직 성장의 한가운데 있는 아이들이 입시라는 이름으로 짊어지는 압박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더 이상 그 무게를 아이의 의지나 노력의 부족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낸 낯설고 기이한 현상이자, 쉽게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이며, 더 이상 눈을 돌려서는 안 될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소아정신과 전문의 천근아 교수는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천 교수는 "어릴 때 조기교육, 선행학습에 시달린 아이의 뇌에 충격적인 변화가 생긴다"라고 단언하며, 과도한 학습이 아이의 성장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구체적인 뇌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 아이들은 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돌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심각성을 왜 외면하고,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기에 지금까지 달려온 선행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이들의 뇌가 망가지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과연 자라서 행복할 수 있을지, 정상적인 마음 상태로 자라날 수 있을지 깊은 걱정이 앞선다.


천근아 교수는 아이들의 뇌 발달 순리를 거스르는 선행 학습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어린 시절은 기억과 감정이 연결된 '정서뇌'를 건강하게 키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고난도 학습을 강요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뇌에 과부하만 걸리게 된다. 단순 암기 위주의 선행은 정서적 경험과 전혀 연결되지 못해 '휘발성'처럼 날아가 버리고, 장기적인 기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결국 아이들은 정작 중요한 장기 기억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스스로 학습을 조절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이 시기에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으로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심리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교육열의 상징인 대치동에 소아정신과가 가장 많은 현실은 바로 이 파괴적인 결과가 낳은 역설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단 하나의 가치

아이들이 무너지고 있다.

누구보다 신나게 뛰어놀고, 웃으며 행복해야 할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의 시기를 이 아이들은 잃어버렸다. 과연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분명 이 아이들은 스스로 이와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을 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만든 범인이 있다면 그건 누구일까.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고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시 오지 않을 아이들의 십 대. 그 소중한 시간을 되돌려주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들의 무너진 뇌와 마음을 '다들 그러니까..'라는 변명으로 외면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난 생채기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훨씬 넘어섰다.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병을 안고 어른이 된 아이들. 그들이 만들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갈 이유를 알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채, 오직 성취만을 향해 앞으로만 내달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들의 위태로운 현재는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마주하게 될 암울한 미래일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와 같다.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불안과 경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압박감부터 걷어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 1위라는 참담한 타이틀을 벗어나고 싶다면,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의 무너진 마음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미래의 문을 닫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절망만 할 필요는 없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단 하나의 가치는 '1등이 중요하다'는 경쟁의 가치가 아니라, '정서적 행복과 안정감'이 인생에 제일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신뢰, 즉 기본적 신뢰를 단단히 쌓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하든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불안에 휩쓸려 아이를 더 큰 경쟁으로 내몰기보다, 아이의 속도와 발달에 맞추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내 아이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이 거대한 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멈추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친구들이 다 그 학원 다닌다고 보내달랬어요.”

“자기가 탑반에 들어가려고 밤을 새우고 밥도 안 먹고 저러는 거예요.”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며, 혹은 친구들이 다 하니까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순간, 우리는 알고도 애써 덮고 외면하게 된다.

그럴수록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잠시 멈추어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의 몸과 마음의 신호를 들어야 한다. 진짜 용기란 더 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함께 멈춰 설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워도 외면하지 말자. 멈추는 그 한 걸음이, 아이를 지키는 가장 큰 용기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이 거세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진도를 다 빼놔야 해.”
“애들이 자기주장이 생기기 시작하면 말 안 듣는단 말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스케줄을 쫙 짜놓지 않으면, 이미 그런 생활은 못 견디는 아이가 되는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 아이들이 말을 잘 들 수 있을까?
그렇게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따르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감정은 언젠가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감정이 일찍 터질수록, 아이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더 빨리 내기 시작할수록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결국 부모가 해주어야 할 것은 지나친 통제가 아니라 자유를 허용할 수 있는 용기다.
이 용기만이 아이들의 무너진 뇌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마음과 행복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부모들이 짊어져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용기 있는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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