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코엑스 앞 올리브영에 급히 들른 적이 있다. 앞사람이 카운터에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길래 무심코 쳐다보니 외국인이었다. ‘와, 저렇게까지 많이 사 간다고?’ 놀라움이 절로 나왔다. 실제로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은 명동과 인사동 같은 관광지뿐 아니라 올리브영을 필수 코스로 삼아 수십 번 들르고, 마스크팩과 에센스, 클렌징 제품을 박스째 사서 캐리어를 꽉꽉 채워 돌아간다고 한다. 세계인들은 지금 이렇게 K-뷰티에 열광하고 있다. 뉴욕의 화장품 매장에서도 진열대 맨 앞줄을 차지한 건 프랑스나 미국 브랜드가 아닌 ‘Made in Korea’ 제품들이고 아마존의 뷰티 카테고리에서도 한국 브랜드가 줄줄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열기는 음악과 드라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BTS)은 유엔 무대에서 전 세계 청년들에게 희망을 노래했고, ‘오징어 게임’, ‘K-Pop Demon Hunters’는 한국을 무대로 삼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일게끔 만들었다. 팬들은 영화 속 골목길을 직접 걸으며 길거리 핫도그를 맛보고, 드라마에서 본 장소를 찾아다니며 한국의 문화를 만끽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유럽의 작은 마을 슈퍼마켓에서도 김치 라면을 팔고,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도 K-팝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대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문화적 혁신을 이끄는 이 나라의 교실은 어떤가. 그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과거로부터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칠판 앞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교사,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정신없이 받아 적는 학생들, 성적과 등수로만 평가되는 시험제도. 3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장면이다.
K-컬처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데, K-교육은 여전히 답답한 모습으로 한국 학생들의 숨을 조이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세계인들은 K-뷰티로 피부를 가꾸고, K-팝으로 떼창을 하며 들떠하고, K-드라마로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정작 한국의 학생들은 무력감으로 점점 웃음을 잃고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세계 무대를 휘저을 창의와 다양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길러질 수 있는 걸까? 여전히 교실 안에서는 순응과 오래된 관습의 답습만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교실은 언제쯤 K-컬처와 같이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지금 모습으로는 안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마치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 갇힌 듯, 그 안에서 기차를 멈추고 홀로 뛰어내릴 용기를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혁신학교에 보내거나 시골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키울 용기를 낸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어떤 이들은 해외 유학이라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는 그럴 수 없기에, 그저 큰 욕심 없이 자기 앞가림은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고자 남들 하는 것을 비슷하게 하며 흐름을 따라간다.
자기 앞가림은 하며 살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낸다는 게 욕심 아닌 욕심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이조차도 욕심 인가 싶어 스스로 되묻게 된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너희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고 싶어?”
뜻밖에도 아이들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글쎄요, 고민은 되지만… 초등학교 때까진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에서 키우다가, 우리처럼 중학생쯤 되면 이사 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 대답을 듣고 있자니, 아이들조차 이미 이 사회의 현실적 분위기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헛헛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그 길을 나의 아이들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려나 싶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지쳐 힘들 때면, 엄마의 휴대폰 속 옛 사진들을 꺼내 보며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그 속에는 마음껏 뛰놀며 웃음이 가득했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을 넘기고 동영상을 보다 보면, 그때의 기분과 감정이 떠올라 지친 마음이 풀리는 듯하다.
파랗고 높던 가을 하늘 아래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기억, 붉게 물든 단풍 속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르던 순간, 솔방울이 바닥을 덮은 캠핑장에서 해먹에 누워 까르르 웃는 모습이 사진 속 풍경과 겹쳐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여행과 모험으로 가득했다.
가을이면 “엄마, 설악산 언제 가요? 이번 주면 단풍 들지 않을까요?”라며 재촉했고, 여름이면 “아빠, 지난번에 강릉 갔으니 이번엔 부산 갈까요?” 하고 들떠 묻곤 했다. 계절이 바뀌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들이었으니, 지금의 생활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그래도 고3이 된 아들은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다녀오거나 양재천을 달리며 숨을 돌린다. 그런 시간이라도 있어야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가 보다.
요즘 이 동네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졸업식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졸업을 해도 친구들과 헤어질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대부분이 함께 재수학원으로 향하기에,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할 뿐, 학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고등학교 과정을 4년이나 5년으로 늘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여전히 쓸데없는 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거의 없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엎드려 자고,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드물다. 교사들 또한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수업을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긴 세월 동안 바뀐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머리를 쥐어짜도 딱히.. 도시락이 아닌 맛있는 급식이 나온다는 정도? 씁쓸하지만 그것이 가장 뚜렷한 변화라면, 우리의 교육이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더 뼈아프게 깨닫게 된다
교과과정을 수차례 뒤집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첨단 기술이라며 AI교과서와 디벗을 교실에 도입하기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너무 성급했고 껍데기에 불과했다. 비싼 돈을 들여 아이들에게 배포한 디벗을 제대로 사용하는 학교 현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입식 교육, 사교육 의존, 입시 경쟁, 학생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이 뿌리 깊은 문제들은 여전히 교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왜 변할 수 없는 걸까? 실제로 OECD 조사에서 한국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사교육비 지출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대학 서열과 학벌 중심 사고가 깨지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겉돌 뿐, 사교육 시장이나 경쟁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케이팝과 K-드라마, K-뷰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교육은 30년 전의 교실 풍경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답답한 현실은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웃고, 맘 편히 숨을 쉬고, 자기답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창의적인 아이들, 행복한 아이들, 그리고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