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갇힌 아이들

by 생각한대로

"그 집 딸 아직도 집밖으로 안 나온대요?"

"그러게 말이에요. 검정고시 보려고 자퇴한 줄 알았는데,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네요."

"아고.... 그 엄마 얼마나 속이 탈까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성적장학금을 받고 졸업한 아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온 뒤, 성적이 원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자 아이는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수업시간 시험 관련한 선생님의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였다.

밤에는 고작 두세 시간 눈을 붙이고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과목별로 빠짐없이 학원에 다니면서 기출과 예상문제들을 한 문제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풀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또 했는데도 중학교 때만큼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다.

“엄마, 000는 소화가 안 돼서 맨날 죽을 싸 와서 먹어요.”
“엄마, 000가 며칠째 학교에 안 나와요.”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자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래, 벌써 서른 번째 자퇴생이라니 000도 그럴 만도 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곧 들려온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집에서, 아니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을 줄이며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성적에 아이는 끝내 깊은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검정고시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몇 년째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무력감은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 버렸다.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다 괜찮다고 한다.

문제의 징후가 보여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혹여 깊이 들여다보다 정말 문제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애써 아이의 마음을 살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군지 아이들의 일상은 학원으로 꽉 차 있다. 월, 수, 금에는 수학학원. 화, 목에는 국어와 영어. 주말에는 물리와 화학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숙제할 시간조차 없다. 새벽 두세 시까지 잠을 줄여가며 숙제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다 소화할 수 없는 그런 양이다.

이런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의 신분이라지만, 이건 좀 정도가 지나치다. 어른인 우리조차 누군가가 매일같이 쉴 틈도 없이 달리라고 한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압박 속에서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그 아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어디에서 어떻게 풀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처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강자 앞에서는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만났을 때, 아이들 역시 사람인만큼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미 오래전 ‘전치(Displacement)’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했다.

억눌린 감정이나 충동을 원래의 대상에게는 표현하지 못하고, 더 안전하고 약한 존재에게 옮겨 발산한다는 상황을 말한다. 가령, 회사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온 아버지가 집에 와서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다. 아이들 또한 부모나 선생님, 학원 시스템이라는 강자에게는 순응하지만, 친구나 동생처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존재에게는 쌓인 긴장을 풀어내려 한다.

그래서 친구를 교묘하게 괴롭히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당하는 아이만 힘들 뿐, 학교 현장에서는 웬만한 일로는 학폭으로 신고해도 큰 문제없이 끝나 버린다. 아이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 치밀해지고, 더 교활해진다.

또 어떤 아이는 학원 선생님에게 고약하게 굴기도 한다. 학원선생님께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무시한다. 그 모습만 보면 버릇없다고 손가락질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 역시 쌓이고 쌓인 긴장이 터져 나오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한 무게가 엉뚱한 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어떤 아이들은 게임 속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현실에서 차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가상의 공간에서는 마음껏 쏟아내며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가장 약한 존재를 향하거나, 부모가 보지 않는 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 순간을 외면하는 사이, 아이들의 마음은 더 깊이 병들어 간다.


하루이틀 반복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들은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잠시라도 쉬려 하면 곧 시속 150km로 달리는 레이스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래서 멈출 수도, 내려올 수도 없는 채 달리고 또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아이들은 어쩔 도리 없는 무력감을 껴안은 채 멈춰 서고 만다.

그때의 멈춤은 잠시 숨을 고르는 쉼이 아니다. ‘나는 결국 해내지 못했구나’라는 자기부정으로 이어져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자신이 낙오자이자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깊은 좌절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게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험 신호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작은 피난처.

정해진 대로만, 틀 속에서만 살아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결국 그곳에서만 안도감을 찾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찾을 수 있을까? 삶이 공부가 다가 아닌데, 왜 삶을 공부와 성적, 경쟁으로만 보고 있는 걸까.

마음을 나누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어른들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늘만 학원 빠지면 안 돼요?”
“엄마, 배가 아파요.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학교 가기 싫어요.”
“다들 이번 시험 어렵다던데…”

이 짧은 말들 속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언젠가 용기 내어 건넸을지도 모를 그 말들에 어른들은 제대로 반응했을까?

하지만 반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곧 지쳐 버린다.
“말해서 뭐 해, 더 혼나기만 하지.”
“이번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틀리면 난 못 놀아. 엄마가 허락 안 해주실 거야."

이런 생각들이 쌓이며 아이들은 차츰 포기하고,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신호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마음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제는 성적이나 등수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할 때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아픈 아우성은 결코 작지 않다. 다만 그 신호는 부모가 외면하지 않고, 진심으로 들으려 할 때 비로소 보이고 들리게 된다.

아이들은 사실 대단한 해결책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부모가 “너 괜찮니?”, “힘들지?” 하고 마음을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버틸 힘을 얻는다. 그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는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가장 든든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질 때, 아이들은 비로소 안심하며 다시 힘을 내고 천천히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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