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시대, 스스로 사유하고 결단하는 힘
30년 전,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지금과는 정말 많이 달랐다.
그때는 휴대폰도, 아이패드도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거나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며 놀았다. 매점 앞에 줄을 서서 라면이나 빵, 우유를 사 먹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게 우리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다르다. 손에는 늘 휴대폰이나 아이패드가 들려 있다. 음악을 듣고, 인스타그램을 보며,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도 달라졌다.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면, 노트에 줄줄이 받아 적던 우리의 방식 대신, 아이들은 아이패드로 칠판을 찍고, 그 위에 메모를 덧붙이며 공부한다.
우리 세대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무조건 쓰면서 외우는 거야”라며 책상 앞에 앉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왜 필기를 안 하니? 다 받아 적어야지!”라고 말하는 건, 자동차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래도 말이 제일 빠르지”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대가 달라지면 도구도 달라지고, 공부 방식도 바뀐다. 30년 전의 열정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듯, 지금 아이들의 방식 또한 그들 세대의 현실이자 일상이다.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결국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는가일 것이다.
게다가 우리 때는 “학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면 안 된다. 아파도 가야 한다.”는 게 당연한 규칙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 사이에서는 '개근거지'라며 놀림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마음 아픈 사건도 있었다. 우울증을 앓던 한 교사가 학생을 데려가 목숨을 앗아간 일이었다. 매우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지만, 이 사건은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옳지. 그냥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필요할 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선생님이 뺨을 때리거나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몽둥이를 드는 체벌에도 토 달지 않고 따라야 했다. 어른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무조건 따르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줄 아는 힘이야말로 아이들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안전망이다.
위험 앞에서 아이가 내린 '스스로의 결단'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폭발물 테러 위협 팩스가 접수됐었다.
선택과목 교실로 이동하던 중, 아이는 우연히 복도에서 선생님들이 모여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님은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이와 친구들은 그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학교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팩스가 와서 확인 중이다”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그 뒤로도 수백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시간이 꽤 지나도록 그대로 방치되었다. 만약 그 폭발물 위협이 실제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속한 대피도, 빠른 대응도 없었다. 최소한 아이들을 운동장으로라도 내보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순간 아이들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이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게 문자로 전해왔다.
“엄마, 학교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팩스가 왔대요.”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선생님들은 안 보여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아이들을 그대로 교실에 앉혀둔 채 아무런 안내도 하지 않는 걸까. 아이 역시 점점 불안해졌는지,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저 그냥 조퇴하고 집으로 갈게요.”
그리고는 스스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아이는 결국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교실에 앉아 위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직접 움직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본 것이다.
나만 해도 ‘옛날 사람’이라 선생님의 지시 없이 혼자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 친구들과 함께 “어떡하지?” 하며 발만 동동 구르며 30분이고 1시간이고 그대로 기다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는 달랐다. 집에 오고 있다는 아이의 전화를 받는 순간, 그동안 뉴스를 통해 접했던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가 집에 도착하고서도, 폭발물 팩스가 접수된 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전교생에게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만약 그 위협이 현실이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학교의 대응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최선이었을까? 이런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부터 일부러 다양한 사건, 사고 뉴스를 함께 보곤 했다. 그리고 물었다.
“너희라면 저렇게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할래?”
정답을 주기보다는 한 번쯤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닥칠지 알 수 없기에 미리 답을 정해 주는 것도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단지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해. 아직은 어리니까 비상 상황이 생기면 선생님이 잘 안내해 주실 거야. 하지만 혹시 혼자이거나 어른이 곁에 없다면 네가 직접 판단하고 행동해야 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독일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무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
공자 역시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학교에 폭발물 위협 팩스가 도착했을 때, 아이는 스스로 판단해 집으로 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상황에 따라 어떤 면에서는 그 선택이 옳았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순간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용기와 판단을 칭찬해 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유하는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깨달았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용기, 미래를 여는 힘
김누리 교수가 지적했듯, 경쟁과 정답 중심의 교육은 아이들의 사유 능력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왜 이런 걸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조차 던지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머리에 담아도 결국 그런 지식은 AI가 이미 다 갖고 있는, 값싼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겉보기엔 똑똑해 보여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AI의 기술은 이미 인간을 훨씬 앞선다. 단순한 암기와 반복은 더 이상 인간의 몫이 아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그 지식을 어떻게 연결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가 하는 창의적 사고력이다.
결국 ‘사유하는 힘’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큰 자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은 아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을 혼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경찰을 불러, 운동장에 경찰차가 들어오는 소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교권이 무너지고 선생님을 무시하는 태도는 결코 정상적인 모습일 수 없다. 그것은 올바른 사유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 단순한 반항이자 교권 침해일 뿐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복종도, 무분별한 반항도 아니다.
열린 사고와 스스로 사유하는 힘,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행동이다. 단순히 주어진 규칙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고 책임 있게 선택할 줄 아는 힘이야말로 아이들을 지켜주는 진짜 자산이다.
결국 AI 시대, 교육의 질문은 명확하다. AI보다 못한 정답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아니면 AI조차 던질 수 없는 '창의적인 질문'을 만들어내는 힘을 키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왜 이런 걸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사유의 씨앗을 던지는 능력이야말로, 단순한 지식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내는 창의적 사고력의 출발점이다.
지금껏 우리는 아이들을 줄 세우고, 정해진 틀에 가두며, '가장 좋은 길'을 대신 정해주려 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진정한 자산은 남들이 정해준 길을 잘 따라가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줄 아는 '용기 있는 사유'다.
아이들이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사유의 생산자로 성장할 때, 그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지키고, 마침내 미래를 이끌어갈 단단한 주체가 될 것이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힘'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채울 수 없는 인간다움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자,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