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보면 무너지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사춘기를 거치면서 초등 때부터 시작됐던 선행에 반항 아닌 반항을 보이거나 아이가 입을 닫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결코 이유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 현상을 확인했다.
어떤 개들에게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전기 자극을 반복해서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개들은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어도 더 이상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믿음을 학습해 버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매일같이 학원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쉴 시간은커녕 숙제할 시간조차 부족하다. 하나를 간신히 끝내면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제대로 된 밥을 식탁에 앉아 먹기는커녕 '한 끼 굶어도 안 죽어!'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어가며, 편의점 삼각김밥과 과자로 대충 허기를 때우고 학원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긴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숙제를 겨우 끝내고 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후, 밤늦은 시간 귀가를 하면 책상 위에 바로 내일 있는 학원의 또 다른 과제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친구들 역시 다르지 않다. 다들 멈추지 못한 채 달리기만 하는 모습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한 삶일까?’
결국 아이들은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깊은 무력감에 짓눌린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아무리 해도 난 안 돼.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 밤새워 죽을 만큼 열심히 해도 결과는 똑같아. 더는 할 수가 없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반복된 실패와 비교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자신을 포기하고, 이제는 시도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학습된 무기력이 만들어낸 심리적 감옥이다. 마치 시한폭탄과 같다. 언제 터지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언젠가는 곪아 터지게 된다.
부모들은 그저 “대학만 붙으면,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져. 대학 가고 나서는 다 네 마음대로 해”라며 하루하루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버틸 뿐이다.
끝없는 과제와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을 잃어버린 채, 결국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로 변해간다. 학습된 무기력은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의지를 마비시키는 독이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성적이나 대학 입시의 당락이 아니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절망에 갇히거나 더는 도전할 힘조차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성적의 당락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무력감에 갇혀버린 마음은 아이의 미래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지금 우리가 외면한다면, 내일은 더 많은 아이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힘,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끝없는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
“아무리 해도 안 돼. 해봤자 똑같아.” 이 말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더는 다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방어다.
수없이 시도했지만 늘 달라지지 않는 결과 앞에서, 아이들은 자신은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느끼며 스스로를 단정 짓는다.
하지만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2021)는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믿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실제 자신의 능력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 믿음이 바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해냈다’는 작은 성공경험이 쌓일 때, 아이의 마음은 서서히 회복된다.
그래서 무기력한 아이에게 필요한 건 “힘내!” “열심히 해!” 같은 말이 아니다.
“이번 시험 정말 어려웠다며? 그래도 네가 끝까지 정신을 집중했다니 정말 잘했어.”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끝까지 해보려는 그 마음이 정말 대단한 거야. 그런 마음이면 언젠가든 분명히 풀 수 있어.” 이 한마디가 아이에게 ‘이건 실패가 아니구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면 되는 거구나’하는 용기를 준다.
비에 젖어 꺼져가던 마음의 모닥불 속에서, 작은 성공 하나가 다시 타닥타닥 타오르며 불씨로 살아난다
처음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목표로 시작해야 한다.
“오늘은 한 문제만 더 풀어보자.”
“이번에는 15분만 멈추지 않고 집중해 볼까?”
이렇게 성공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아이의 뇌는 ‘내가 해냈다’는 성공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자신감을 학습한다.
그리고 그때 부모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그 경험은 더욱 확고해진다.
“봐, 네가 해냈잖아. 한다면 해내잖아! 너를 한번 믿어봐.”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레 성장 마인드셋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스탠퍼드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말한다.
“In the fixed mindset, failure means you’re not smart or talented.
In the growth mindset, failure is information.
we label it, we learn from it, and we move on.”
“고정된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에게 실패는 ‘나는 재능이 없다’는 뜻이지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에게 실패는 배움의 신호다.
그들은 실패를 분석하고, 배우며, 다시 나아간다.”
“The view you adopt for yourself profoundly affects the way you lead your life.”
“스스로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아이는 실패를 ‘끝’이 아니라 ‘다음 시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난 안 돼.” 대신 “이번에는 이게 부족했구나. 다시 하면 할 수 있어!”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바꾸고, 결국 인생을 바꾼다.
부모의 역할은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시선을 다시 ‘가능성’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이번엔 잘 안 됐지만, 네가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처음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한 거야. 다음번에는 이 부분만 좀 더 보완하면 정말 성공하겠는걸!”
이 말들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다시 세우는 회복의 언어다.
비난 대신 공감, 조언 대신 신뢰, 그리고 기다림. 이 세 가지가 아이의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이의 마음은 쓰러진 채로도, 할퀴어진 채로도 자라난다.
다만 누군가 그 곁에서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다시 해보는 거야”라고 말해줄 때, 아이의 마음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상태로 희망의 뿌리를 내린다.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의 실패가 아니라 아이가 다시 일어설 기운을 잃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로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지만 따뜻한 한마디다.
"괜찮아, 실패는 누구나 해.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더 잘하게 되는 거야. 난 네가 다시 해낼 거라는 걸 믿어.”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말한다.
사람은 실패나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배울 수 있는 존재라고.
그는 이를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라 부르며, 좌절을 부정의 증거로 보지 않고, 성장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사람을 더 강하고 회복탄력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점수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실력이 쌓이고 있다는 믿음이다.
오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나는 성장하고 있다. 조금 느려 보여도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분명 열매가 맺힐 것이다”라는 믿음이
아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 없는 안전한 길이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배우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작은 좌절을 겪을 때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습관. 그것이야말로 셀리그만이 말한 ‘학습된 낙관주의’이자, 아이를 무기력에서 꺼내어 다시 도전하게 만드는 마음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