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좌절이 아이를 단단하게 한다.

by 생각한대로

소아정신과 의사 류한욱과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이 함께 쓴 책 <적절한 좌절>에는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온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이 내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경험”이다. 책에서는 이것을 ‘적절한 좌절’이라 부르며,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이는 현실의 불확실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작은 파도에도 쉽게 흔들리는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가 적절한 좌절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은 일상 속에 얼마든지 있다. 마트에서 원하던 장난감을 당장 사지 못할 때,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더 저렴하지만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했으니 놀이터에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을 지켜야 할 때, 시험에서 기대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친구의 비난이나 놀림에 서운한 마음을 느낄 때 등. 이런 순간들이 모두 아이가 ‘세상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가 생각하고 대처할 수 있게 기다려주지 않고, 앞서 나서 모든 걸 대신 해결하고 불편한 감정을 미리 차단해 버린다면, 아이는 스스로 감당하며 단단해질 기회를 잃게 된다.


<적절한 좌절>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부모의 과잉 애착과 보호는 아이에게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빼앗는다. 결국 분리와 독립의 과정은 실패로 끝나고,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는 기반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당한 인사이동에 분노한 부모가 병원을 찾아와 “내 딸이 뭐가 모자라서 이런 대우를 받느냐”며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일은 비단 책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 기업 현장에서도 “아이가 몸이 좀 아파서 회사를 못 갈 것 같다”는 부모의 전화를 듣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어릴 적부터 용돈을 어떻게 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건 낭비야, 차라리 이걸 사”라며 부모가 대신 선택해 주는 경우도 흔하다. 혹은 시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아이보다 먼저 부모가 유명 학원을 알아보고 선생님을 골라 등록해 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순간적으로는 아이를 챙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경험을 차단하는 셈이다.


심리학에는 ‘좌절 내성(frustration toler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해, 원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이 폭발하지 않고 차분히 생각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이다.
이 능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작은 불편함을 조금씩 견뎌본 경험이 쌓이면서 만들어진다.


최근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한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할머니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손녀에게 어릴 적부터 신발 속에 돌을 넣고 걷게 하는 장면이었다.
작은 시골집 마당, 꼬마 손녀는 “왜 내 신발에 돌을 넣어?” “왜 그래야 해!”라고 짜증과 화를 내며 외쳤다.

그런 아이에게 할머니는 단호하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지! 그게 불편이라는 거야." “불편해야 해. 세상은 네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거든.”

그 말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돌멩이는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삶이 늘 편하고 부드럽지만은 않다는 걸, 그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결국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걸 알려주는 가르침이었다.

완벽하고 편안한 환경에서만 자라면서 실패 없는 길을 걸은 아이는,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넘어지는 법을 배운다. 아이를 보호했던 행동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넘어지는 아이로 키울 것인가?


하지만 신발 속 돌멩이 하나쯤은 감당하며 자란 아이는 세상의 거친 길 위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알기에, 손녀가 언젠가 세상과 맞설 수 있도록 작은 연습을 시킨 것이다.
그 한 개의 작은 돌멩이가, 아이의 마음에 ‘좌절 내성’이라는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었던 셈이다.


적절한 독립이 먼저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단한 울타리보다 적절한 거리다.
부모의 품은 따뜻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아이는 스스로 설 공간을 잃는다.
“엄마, 나 화장실 가요.”
“엄마, 나 그다음엔 뭐해요?”
놀 때도, 쉴 때도,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늘 부모에게 묻는다면, 그건 부모와 아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 은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는 부모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라고 말하며,

“충분히 좋은 부모란 아이를 완벽히 만족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적절히 좌절시켜 세상과 마주할 힘을 길러주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전한 보호가 아니라, 작은 불편을 견디게 하는 연습이다.

부모가 모든 걸 대신 결정해 주는 환경에서는 결코 아이의 사고력과 자율성이 자라지 않는다.
결국 그 아이는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거친 바람을 처음 맞이할 때,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아이는 바로 그 ‘작은 불편함'과 ‘적절한 좌절’ 속에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희한하게도 부모가 조금씩 손을 놓고 기다려주는 순간
아이는 자신 안의 자원을 꺼내 쓰는 법을 배운다.

위니컷은 이 과정을 “optimal frustration”, 즉 적절한 좌절이라 불렀다.
그는 아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할 때마다
내면에 '현실을 살아낼 힘'이 자리 잡는다고 말한다.
작은 실패를 견디는 힘, 버티고 버텨 기다릴 줄 아는 인내,
불편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자아.
이 모든 것은 부모의 완벽함이 아니라, 적절한 부족함을 건네고 기다리는 속에서 자란다.

완벽한 부모는 아이를 편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의 '최선'이 어떤 의미인지 반드시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함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자란 아이는 오히려 그 완벽함이 아이에게 독이 되고,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아이는 조금씩 좌절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자란다.


아이의 탄탄한 내면은
부모가 모든 것을 해줄 때가 아니라,
부모가 한 발 물러설 때
비로소 자라난다.


어찌 보면 사춘기는 아이 인생에 그 ‘적절한 좌절’을 배우는 적기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은 청소년기를 “정체감 대 혼미의 시기”라 불렀다.
이때야말로 아이는 스스로 부모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만의 정체성을 세우려 고집한다.
감정이 요동치고, 반항이 깊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독립의 신호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처음 맞닥뜨리는 이 과정을 낯설게 바라본다. "아이가 문제가 있어요. 요즘 이상해졌어요. 얘가 안 하단 짓을 해요." 하면서 아이들의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를 더 강하게 통제하려 든다.
그럴수록 부모는 아이들과 부딪히고, 서로 좋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잘 독립한 아이들은 세상에 우뚝 설 힘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부모로서 해줄 단 하나의 역할은 아이의 중심을 대신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스스로 세울 수 있도록 조용히 물러서는 일이다.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대신,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의 말을 건네면 된다.
그 믿음 속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홀로 세상을 향해 자기 발로 걷기 시작한다.
적절한 독립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아이는 세상의 불편함과 좌절을 견뎌내는 힘을 얻게 된다. 그만큼 단단한 아이가 되어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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