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by 생각한대로

벼랑 끝의 약속 "대학만 가면 네 마음대로 해 "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끝나는데?"

책상에 축 늘어져 엎드린 아이의 목소리는 힘겹고 절망적이었다. 몇 년째 지속되는 수면장애, 소화장애. 불안장애. 이 동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라는 긴 터널을 달리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다. 옆집에서도, 또 그 옆집에서도 늘 들려오는, 바로 그 '조건부 행복'의 거래 현장이다.

"조금만 참아. 이제 거의 다 왔잖아. 대학만 가면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그때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니까."

아이는 그 말을 유일한 구명줄처럼 붙잡았다. '대학'이라는 종착역만 찍으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나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시작될 거라 굳게 믿으며 수많은 밤을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그토록 염원하던 대학의 문을 힘겹게 통과했다.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며 ‘드디어 해방이다’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곳에도 자유는 없었다. 여전히 끊임없이 경쟁하고, 쉴 틈 없이 뛰어야 했고, 누군가의 기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제야 아이는 깨달았다.
“대학만 가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그 약속은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였다.

그 시절의 고통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된 희망이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기쁨이나 안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분노와 절규였다.

"엄마가 원하던 대로 대학 왔으니까 됐지?!" 그동안의 삶 동안 쌓인 감정까지 폭발한 아이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엄마에게 억눌렀던 모든 것을 쏟아낸 후, 엄마를 칼로 찌른 후, 어떻게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는 알았다. 목표를 이뤄도, 또 다른 목표가 기다릴 뿐이라는 것을. 조건부 행복의 굴레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행복은 대학의 문 앞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간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행복을 자꾸 ‘나중’으로 미루도록 가르치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작은 것에 감사하고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을까?

행복을 늘 ‘나중’으로 미루는 사회의 고질적인 습관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낸다.

대학, 취업, 승진… 우리는 늘 "성취가 끝나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고 아이들을 채찍질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의 찰나 같은 감정은 너무나 짧고, 순간의 환희뒤에 몰려오는 공허감은 생각보다 감당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결국, 부모가 믿고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진짜 약속은 “대학에 가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아들아, 오늘도 행복했어?"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한마디가, 아이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행복하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을 늘 미래의 조건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결혼하면 행복할 거야"라는 말은 결국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행복을 유예하는 습관만 남긴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다. 오늘 하루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경험이다. 햇살 가득한 창가, 친구와의 시시콜콜한 농담, 가족과 함께 웃는 저녁 식탁.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안한 아이의 마음을 지탱해 줄 진정한 힘이 된다.

행복은 성적표처럼 외부가 보장해 주는 성취가 아니다. 행복은 '나중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의 상태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행복이 아이에게 전염된다

어느 날 카페에서였다. 옆자리의 한 엄마가 초등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빨리 풀어! 여기까지 다 풀어야 간다니까!”라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엄마가 많이 예민하네…’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잠시 뒤 그 엄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더니
카페가 떠나가도록 격한 목소리로 다투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에는 불안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노트에 뭔가를 긁적이고 있었다.

부모가 이렇게 분노의 감정을 표현할 때, 과연 아이는 행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까?

아이는 수학 문제를 푸는 법은 배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다.


교육학자 조벽 교수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면 아이 역시 불안을 학습한다. 반대로 부모가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누릴 줄 알 때에 아이도 행복의 감각을 이어받을 수 있다.

행복은 지식처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전염되는 것이다.


아이가 중학생시절 이런 편지를 내게 건넨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우리 가족의 태양이에요.

무뚝뚝한 아빠와 항상 차분한 오빠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집이 따뜻해져요.

우리 셋이 각자 멀뚱멀뚱 서 있을 때, 엄마는 마치 우리들의 연결고리인 것처럼 우리를 하나로 모아요!"

서툰 표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참 고마웠었다.


결국, 부모가 먼저 오늘 하루를 웃으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 아이들이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순간들. 그 작고 소중한 일상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아이들은 똑같이 작고 소중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행복을 찾게 된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비싼 학원을 등록해 주는 것도, 이름난 대학을 가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삶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부모가 그 길을 먼저 살아낼 때, 아이는 행복이 먼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오늘 바로 만나야 할 감정임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스스로 결정하는 힘에서 온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은 결국 하나다.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행복으로 가는 길마저 대신 정해주려는 실수를 한다.
“이걸 해야 성공할 수 있어.” “이 길로 가야 행복해지는 거야.”

그 말은 분명 사랑에서 시작되지만, 아이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로 들린다.
그 순간,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하는 일’로 바뀐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

이런 인간의 내적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제시했다.

그들은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성장하려면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 자율성(Autonomy)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이건 내가 결정한 거야."

2. 유능감(Competence) 무언가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 “조금 어려웠지만 결국 내가 해냈어.” "지금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난 해낼 수 있어"

3. 관계성(Relatedness)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내 곁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 "부모님은 나를 늘 응원해 주셔"

이 세 가지가 채워질 때, 사람은 ‘외부의 보상’ 없이도 스스로 동기와 행복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된다.


덧붙이자면,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원 가기 싫어!”라고 말했을 때, 많은 부모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가. 갑자기 왜 안 간다고 그래!”

하지만, “왜 학원이 가기 싫은 거야? 그럼 학원 안 가면 어떻게 공부할지 네 생각을 얘기해 줄래?"

이건 단순히 타협이 아니다.
‘선택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주는 일이다.
그 한마디에 아이는 ‘엄마가 내 의견을 존중하고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받아들인다.

그 순간, 아이는 자신의 삶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보다 앞서, 부모가 아이의 삶을 더 많이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답이나 안전한 길을 알려주는 대신 질문을 하면 된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잘 고민하고 결정해 봐. 넌 분명 잘 찾아낼 거야."

" 대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함께 생각해야 해”
이 짧은 질문 하나가 아이에게 커다란 책임감을 심어준다.
‘결정은 내 몫이고, 나는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믿음이 바로 자율성의 뿌리다.


두 번째는 유능감은 단지 성공적인 결과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잘 안 되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과정을 부모가 인정하고 알아줄 때 더 단단해진다.

아이가 밤새 준비한 과제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했을 때,
“결과는 아쉽지만, 지난번보다 훨씬 끈기 있게 잘했어! 이제 너에게 맞는 공부법을 알았으니까 다음번에는 잘 해낼 거야."

이 말은 ‘실패했다’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아이는 그 한마디로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운다.

또 아이가 스스로 고민해 문제를 해결했을 때는 “와!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방법을 찾아내다니 정말 대단하네!”라고 인정의 말을 해준다면,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유능감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세 번째, 관계성은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생긴다.
즉, 부모의 사랑이 시험 결과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아이의 마음에 신뢰와 안정감을 준다.

아이가 시험을 망치고 짜증을 내거나, 친구 문제로 화를 낼 때 부모는 종종 “네가 잘못한 거 아냐? 그러니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정말 독이 되는 말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속상하지? 그럴 수도 있어, 세상일이 늘 예상대로 되진 않거든.

하지만 네가 열심히 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한 거야.”

이 한마디는 아이에게 ‘내 감정은 틀린 게 아니구나’라는 심적 안정감을 준다.

아이는 그런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구나.’

'내가 잘하든 못하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는구나.'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평생,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결국 행복은, 결과로 증명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받으며 성장해 온 경험에서 자라는 마음의 힘이다.
부모가 아이의 자율성과 유능감, 관계성을 지켜주는 순간, 그 아이는 이미 자기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 행복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단순하다. 아이의 삶을 대신 설계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건 네가 선택한 거야. 엄마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믿고 지켜볼게. 응원해!”
그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속 자율성을 살리고, 삶을 이끌어가는 힘의 씨앗이 된다.

결국 행복은 성적표나 합격증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마음’에서 자란다.
부모가 통제 대신 믿음을, 지시 대신 선택의 기회를 줄 때,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

“행복은 누가 정해주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가며 만들어가는 나만의 길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행복은 습관이며, 삶을 사는 방법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선택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대학만 가면 행복할 거야"라는 조건부 약속이 아니다. “지금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자. 지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도 행복을 느낄 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배운다.
감사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할 줄 안다.

하지만 불평과 짜증 속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을 두려움과 결핍으로 기억한다.
부모의 “돈이 없어 힘들다”는 말은 아이에게 “행복은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메시지로 새겨진다.

아이에게 진짜 물려줄 것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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