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를 보면, 예전의 놀이터와 지금의 놀이터를 비교하며 아이들이 왜 불안하고 우울 해졌는지에 관한 그의 의견이 나온다.
예전의 놀이터는 위험했다. 안전망도 없는 엄청난 높이의 봉에 매달려 노는 놀이터가 아닌 공사현장 같기도 한 환경, 가드가 없어 미끄럼틀에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고, 철봉에서 손을 놓치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이들은 다치고 깨지면서 인생의 모험을 경험하고,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해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공간이었다.
지금의 놀이터는 어떠한가? 고무바닥이 깔려 있고, 다치지 않도록 놀이기구는 낮아져서 다섯 살만 넘어가도 놀기에 시시한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위험은 줄어 안전한 놀이터가 되었지만, 그만큼 도전과 설렘, 모험의 기회도 사라졌다.
지나가다 보면 단지안 놀이터는 늘 텅 비어있기 일쑤다. 엄마들이 시간을 맞춰 약속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은 몸으로 부딪히며 배울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더구나 하루 대부분을 스마트폰 속에서 보내는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그 작은 화면은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도전과 모험, 실패의 기회가 없는 세상이다.
부모의 양육 태도 역시 아이들의 불안을 키운다. 혹시 다칠까, 혹시 실패할까 걱정이 앞서 대신해 주고 막아주다 보니, 아이들은 작은 실패에도 큰일이 난 듯 반응한다. 실패를 견디고 회복하는 경험이 부족한 채 보호 속에서만 자란 아이들은, 결국 현실의 작은 파도에도 쉽게 흔들리는 ‘불안 세대’가 되고 만다.
결국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안 세대의 그림자는, 안전을 지나치게 강조한 사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그리고 스마트폰 속에 갇힌 하루하루가 만들어낸 결과다.
아이들이 다시 세상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스스로 일어나는 경험을 할 때 비로소 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 문제를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다. 입시 경쟁 구조 속에서 단 한 번의 실패는 단순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수, 삼수, N수로 이어지며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는 무거운 결과가 된다. 아이들은 이런 ‘실패의 무게’ 앞에서 도전을 두려워하고, 점점 ‘안전한 선택’만을 고집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학교에서 친구와 작은 갈등이 생겼을 때도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시간을 주기보다 부모가 먼저 나서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이나 상대 부모에게 직접 연락해 문제를 조율하려는 이른바 ‘헬리콥터맘’의 모습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 성인이 된 뒤에도 자녀를 품 안에 붙잡아 두며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빼앗는 부모도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MZ세대 신입사원이 몸이 아파 회사를 못 간다는 전화를 부모가 대신하거나, “왜 우리 아이에게만 불합리한 업무를 시켰나요?”라며 부모가 직접 항의하는 사례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자녀의 경제적·정서적 자립을 늦추는 이른바 ‘캥거루맘’ 문화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문제를 부딪히고 해결하는 힘을 점점 잃어간다. 여기에 과도한 사교육까지 더해진다. 방과 후와 주말까지 학원에 묶여 사는 아이들은 남은 틈새 시간조차 빼앗기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 기회도 없다. 몸으로 부딪치며 실패를 경험하기보다, 정해진 커리큘럼이라는 ‘안전한 길’만을 걸어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은 스스로 단단해질 기회를 잃어버린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한국 아이들은 이미 지나치게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전함은 결코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다. 오히려 도전과 실패를 통해 길러지는 힘을 빼앗아버리는, 보이지 않는 족쇄일지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나는 잘 몰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엄마가 도와줘야지, 혼자서는 못 해”라는 믿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마치 어린 시절 다리에 묶인 쇠사슬에 길들여져, 5톤이 넘을 만큼 다 큰 된 뒤에도 충분히 끊어낼 힘이 있으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코끼리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아이에게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사실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대신해 주는 습관, 안전한 길만을 걸어온 경험이 스스로 도전할 용기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호가 아니라, 스스로 넘어지고 일어서며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회복할 기회다.
결국 문제는 아이가 아니다. 도전을 두려움으로 만들고, 실패를 감당할 힘을 빼앗아 온 우리의 방식이다.
아이들이 다시 세상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스스로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불안 세대’의 굴레를 떨쳐내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떨치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작은 실패를 겪게 내버려 두며, 그 과정을 믿음으로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라난다. 가볍게는 가족 여행에서 아이가 직접 길을 찾아보거나 여행코스를 짜보게 하는 것도 좋다. 생활 속에서 친구와의 갈등을 통해 감정을 배우고, 기다려 보고, 관계를 회복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사소한 물건을 고르거나 방 인테리어를 꾸며보는 일처럼 작은 선택이라도 스스로 해보게 하면 훌륭한 훈련이 된다.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된다”는 경험을 쌓을 때 아이의 마음 근육은 단단해진다.
무엇보다 부모의 말 한마디는 아이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만 칭찬하기보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는 말, “네가 한 선택을 엄마는 믿어”라는 격려가 필요하다. 이런 언어는 아이가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내도록 만든다.
결국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완벽한 안전망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말, 그리고 따뜻한 시선이다.
아이를 자라게 하는 힘은 울타리 안의 안전함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경험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이다. 어떤 이는 주저앉아 자신을 가두고, 또 어떤 이는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는다.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벌어진다.
농구 황제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는 경력 동안 9,000번이 넘는 슛을 놓쳤고, 300번 가까운 경기를 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슛을 26번이나 놓쳤다. 나는 계속 실패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조던은 실패를 두려움으로 기억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힘을 가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힘이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손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을까. 답은 거창하지 않다.
아이가 부딪히고 넘어지는 순간을 끝까지 지켜봐 주는 용기, 그리고 믿어주는 마음이다. 성공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힘에 있다.
맹자는 말했다. “生於憂患 而死於安樂(생어우환 이사어안락: 사람은 근심과 환난 속에서 살아나고, 편안함 속에서 죽는다).”
우리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살아나는 힘을 얻는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힘이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완벽한 울타리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