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을 인근 고등학교에 보낸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교권에 있던 고1 학생들 몇 명이 단체로 자퇴를 하고 재입학을 하려 한다는 얘기였다. 9등급제에서 5등급 제로 바뀐 고교학점제에서는 이미 어긋난 내신을 만회할 방법이 없으니,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전략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주변 학교에서는 시험 한번 치를 때마다 아이들이 몇 명씩 사라지더니, 불과 한 학기가 지나자 30명 정도의 인원이 댕강 사라져 버렸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검정고시 응시생이 3년 새 30% 가까이 증가했고, 강남·서초·송파 지역의 학업 중단율은 2%를 넘어섰으며, 고교학점제와 내신 5등급제 도입 이후 ‘내신을 망치면 대학 갈 길이 없다’는 불안감으로 자퇴 문의가 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나오는 걸 보니 이 동네뿐 아닌, 현 교육제도의 심각한 문제라는 게 와닿는다.
부모들 또한, “학교에 남아 버티는 것보다 아예 판을 바꾸는 게 낫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늘 결단력이 부족한, 남들과 비슷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 입장에서 이런 현실은 참으로 난감하다. 자녀가 혹여 "나도 자퇴할까?"라고 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접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가 숨 막히는 교실에서 무기력하게 3년을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정말 나을까? 이제는 선택 과목으로 친구들이 각자의 교실로 뿔뿔이 흩어지고, 애들 기운 빼지 말라는 항의에 체육시간마저 최소화되어 있다. 그러니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조차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 이것이 옳은 길일까?’ 하는 두려움이 부모의 마음을 짓누른다.
결국 문제는 제도가 아이들을 자꾸 교실 밖으로 내몬다는 데 있다.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를 설계하라”는 취지로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은 180도 다르다. 선택 인원이 부족해 원하는 과목을 듣기도 어렵고, 등급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3학년까지 대부분의 과목이 등급제로 평가되면서 공부는 더 힘들어졌다. 대학 입시와 연결되지 못한 과목들의 불균형은 현장에서 혼란만 키우고 있고 언제 또 제도가 뒤바뀔지 알 수 없어 부모들의 불안은 더 커져가기만 한다.
부모로서 바람은 단순하다. 아이가 자퇴나 재입학 같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고등학교 생활 자체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현실. 자기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맞는 수업을 선택해 들어도 괜찮은 교육 환경. 점수와 등급에만 매달리지 않고, 친구들과 웃으며 함께 도전할 수 있는 교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교육 현실은 여전히 그 바람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요즘 대학가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대학을 휴학하거나 자퇴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취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교육에 시간낭비하기 싫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대한민국 교육의 총체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생들은 4년 내내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석사·박사 과정까지 이어지며 공부의 끝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공부가 정말로 스스로 원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서 하는 공부인 것일까?
얼마 전 프랑스에서 시작해 한국에 들어온 ‘42 서울’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기존의 대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교육이었다. ‘42 서울’에는 교수도, 정해진 교재도, 등록금도 없다. 대신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스스로 설계하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함께 배운다. 입학하려면 ‘라 피신(La Piscine)’이라 불리는 한 달간의 집중 선발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이나 스펙이 아니라 협업 능력과 문제 해결력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불필요한 과목을 억지로 이수하며 학점을 채우지 않는다. 실제로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할 틈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배움이 곧바로 실습과 연결되다 보니 학생들은 현장에서 통하는 ‘실질적인 공부’를 경험하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먼저 학생들을 찾아 스카우트해 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실험적인 학교가 장기적으로 얼마나 안정적인 성과와 취업 기회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이 여전히 수많은 학점을 강요하고, 암기식·주입식 수업으로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며, 배움이 삶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자퇴와 휴학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불확실하더라도 혁신적인 교육 방식에 미래를 걸어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42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세라(Coursera) 같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도 주목받고 있다. 코세라는 스탠퍼드, MIT, 하버드 등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며, 원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일부 과정은 단순한 수강을 넘어 실제 학위 취득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즉, 대학이라는 제도적 울타리를 벗어나도 충분히 배움과 성장, 그리고 경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실험적 모델로는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s)이 있다. 이곳의 학생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 런던 등 전 세계 도시를 돌며 학기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배우고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수업은 100% 온라인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배움은 현지 기업·기관과의 협업, 문화적 체험과 연결되어 실제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둔다.
생각해 보면, '42 서울'은 실무와 직결되는 역량에, 코세라는 누구나 배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 미네르바 스쿨은 글로벌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숨어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지식을 외우고 시험으로 평가받는 것만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는 것. 미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깊이 있게 배우고, 함께 도전하며, 삶과 바로바로 연결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학은 여전히 수많은 학점을 강요하고, 암기식 수업으로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며, 배움이 삶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자퇴와 휴학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떠올려 본다. 그렇다면 불확실하더라도 새로운 교육 모델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지금의 대학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변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더 많은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필요한 것은 '삶에 닿는 배움'이며, 대학이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대학'으로 거듭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