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균형 잡힌 언어가 아이의 삶을 균형 있게 만든다
균형 잡힌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투나 어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말이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삶이 조화롭게 흐를 때, 그 말에도 온기가 스며들고 중심이 잡힌다.
결국 균형 잡힌 언어는 균형 잡힌 삶에서 나온다
다섯 가지를 80% 하는 삶의 균형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수없이 말하지만, 정작 마음의 균형은 생각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는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의 숙제를 봐주며 벌써부터 초등학생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다.
우선순위의 균형이 흐트러진 하루는 늘 세상의 기준에 끌려다니다 끝난다.
해야 할 일에 밀려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한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피로와 공허함이 뒤섞여 쌓인다.
이런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누군가의 한마디,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감정이 치솟는다. 그리고 결국, 그 피로는 말로 새어 나온다.
“빨리 안 하고 뭐 하니?”
“엄마 피곤하단 말이야.”
“그냥 네가 알아서 좀 해줄 수 없니?”
이 말들 속에는 분노보다 지친 마음과 무너진 균형의 흔적이 담겨 있다.
내가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기에, 결국 그 고단함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흘러나온 것이다.
균형이 무너진 마음은 결국 삶의 모든 것을 흩트려 놓는다.
관계도, 일상도, 말도 함께 무너진다.
‘균형 잡힌 말은 균형 잡힌 생각에서 나온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 뇌와 마음이 작동하는 실제 원리다.
심리학자 다니엘 시걸(Daniel Siegel)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의 정서적 상태가 아이의 신경 구조를 형성한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의 언어는 예민해지고, 부모가 여유로우면 아이의 표정에는 안정이 깃든다.
결국 아이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부모의 균형이 곧 아이의 균형이고, 내면이 단단한 부모만이 아이에게 단단함을 물려줄 수 있다.
체력이 떨어지는 만큼
정신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체력이 부족하면 여행에서도
사소한 일에 불만이 생기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체력이 있어야 타인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
- 김남희 <일단 떠나는 수밖에>
부모도 사람이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쉽게 무너진다.
체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마음이 넓은 사람도 여유를 잃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진다.
여행 작가 김남희는 말했다.
“체력이 있어야 타인에게도 친절할 수 있다.”
그 말은 부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체력이 있어야 따뜻한 말이 나오고, 여유가 있어야 사랑이 흐른다.
결국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깊은 사랑의 시작이다.
내 몸이 버텨야 내 마음도 균형을 잡는다.
완벽보다 조화, 꽉 채우는 것보다 여백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끝에 건강을 잃거나, 관계가 틀어지거나, 가족이 멀어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마음이, 결국 우리를 소진시키는 아이러니다.
사람에게는 한정된 에너지가 있다.
내가 가진 에너지가 100이라면, 어떤 한 가지에 150을 쏟아부었을 때
그 분야에서는 성취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초과분의 에너지는 결국 다른 영역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
그 순간, 삶의 균형은 이미 기울기 시작한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다면, 그 일은 당신의 전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당신의 인생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일터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고,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거라 믿지만, 퇴근 후 마주한 공허함은 조용히 속삭인다. “일에서의 성공이 삶의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삶의 균형이란 모든 영역을 완벽히 나누는 것이 아니다.
불균형을 알아차리고, 그 틈을 메우려는 의식적인 노력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 조금 덜 채워도 괜찮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비워내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균형이다.
"다섯 가지를 80%씩 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인간답고, 가장 풍요로운 삶일지도 모른다."
— Jordan B. Peterson
조던 피터슨은 말한다.
일, 가족, 건강, 관계, 그리고 자신.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조금씩 숨 쉴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조화로운 리듬을 찾아간다고 말이다.
결국 균형이란 완벽한 분배가 아니라, 삶의 숨결이 고루 흐를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일이다.
일에만 몰두해 다른 것들을 놓치는 순간, 삶은 단단해지지 않고 오히려 메말라 간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면, 직장 밖에도 당신에게 유의미하고 유용한 일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에서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과의 대화, 친구와의 웃음, 나를 위한 짧은 산책 한 번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워주는 힘이 된다.
완벽이 아니라 조화, 꽉 채움이 아니라 여백. 그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삶의 균형’이라는 적정한 온도를 되찾는다.
부모가 삶의 균형을 잃으면, 아이의 세상도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밤낮없이 일하며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헌신’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한쪽의 결핍을 낳고, 다른 쪽의 불안을 키우는 구조다.
“If you don’t design your life,
someone else will design it for you.”
“당신이 삶을 설계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설계할 것이다.”
- Nigel Marsh
나이젤 마쉬는 Ted강연에서 일과 휴식, 성취와 쉼, 사랑과 자기 돌봄의 균형은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부터 스스로 삶의 균형을 설계할 줄 알아야 한다. 식단을 짜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듯, 작은 습관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진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쉬고, 조금 더 아이를 바라봐주고, 조금 더 자신을 돌보는 일. 이 작은 조정들이 쌓여 정서의 균형, 언어의 균형, 관계의 균형을 세운다.
부모의 균형이 아이의 중심을 세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부모의 삶을 보고 배운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쉴 땐 온전히 쉬고, 자신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야.”
반대로, 늘 피로와 불만으로 가득 찬 어른의 말은 아이에게 삶을 ‘견디는 것’으로 가르친다.
그 속에서 세상은 버텨야 하는 곳, 기쁨보다는 의무가 앞서는 공간이 된다.
“사는 게 다 이런 거야.” "그렇게 놀 거 다 놀고 성공하는 사람이 어딨니?” "그러니까 네가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이런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 ‘삶은 버티는 것’'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인식을 남긴다.
삶의 균형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의 완벽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도 그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는 힘, 균형 잡힌 말은 결국 아이의 마음에 중심을 세운다.
삶의 균형을 쫒는 부모의 한 걸음이 아이 인생의 중심을 잡아준다.
하루 중 잠시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비우고 숨을 고르는 그 시간들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가?” "삶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결국, 균형 잡힌 삶이란 하나의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사랑하고, 성장하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순간, 부모는 아이에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