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으며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두 살 터울인 남매는 대화가 많은 편이다.
“넌 어때?”, “오빠는?” 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고, 서로의 생각을 묻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게도 질문이 향한다.
“엄마, 00 선생님이 이번 여름방학에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대요. 여행 얘기를 듣는데 정말 멋지더라고요. 선생님 인생 가치관이 너무 좋아요.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엄마, 절대로 중학생은 가르치면 안 돼요. 애들이 이유도 없이 선생님 욕을 얼마나 하는지 몰라요.”
“엄마, 내 친구 00은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벌써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대요! 나도 수능 끝나면 빨리 일해보고 싶어요.”
오빠는 때론 공부하느라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나름의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그렇게 짜증 내면서 하면 안 돼. 공부는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해야 집중이 잘되거든.”
“하기 싫은 마음이 들면 머리가 안 돌아가지 않아? 난 그렇던데.”
“근데, 웃긴 게 점수가 잘 나와야 또 신나서 공부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다 하려고 하지 말고, 한 과목씩 쪼개서 깊게 파보는 게 어때?”
아이들은 학교에서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밥상머리에서 함께 쏟아낸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상상으로 가득 찬 설렘의 대화이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적이고 진지한 고민의 나눔이 되기도 한다.
옷을 고를 때도 서로 봐주며 “이건 좀 중학생스럽다.” “이 색깔이 더 어울려.” 하며 신중하게 말을 건넨다.
그 짧은 대화 속에 서로의 취향과 자존감이 자란다.
학원을 고를 때도 “00 선생님 스타일이 저한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지문을 스스로 읽고 풀게 하시는데, 전 그게 좋아요.”라며 아이들이 직접 판단하고 선택한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엔 생각보다 깊은 삶을 배워가는 힘이 숨어 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 위해 수없이 시도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간다.
그 모든 탐색과 성장의 과정이, 사실은 밥상머리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묻고, 듣고, 이야기하며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간다.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싶은지를
하루 세끼 밥을 먹듯, 아이들은 대화를 통해 마음의 영양을 채워간다.
결국, 밥상머리의 대화는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그건 아이의 가치관이 매일 한 숟가락씩 자라나는 순간이다.
두 아이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나는 그저 미소 짓는다.
“진짜?”, “우와…”, “걔는 왜 그랬대?”
짧게 맞장구를 치며 밥을 뜨고 반찬을 차린다.
그러다 문득 한마디를 덧붙인다. “00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은 뭐래?”
“엄마가 오늘 지하철 타고 오다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엄마가 겪은 세상 이야기도 들려준다. 대단한 조언은 없다.
하지만 사소한 일상 속 대화에는,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 마주해야 할 가치들이 아이 마음에 조용히 스며든다.
모의고사 전날, 아들은 “오늘은 푹 자야 해요”라며 일찍 잠자리에 들고, 딸은 “긴 시험 견디려면 재밌게 놀다 자야죠” 하며 넷플릭스를 켠다. 각자의 방식으로 긴 하루를 견디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 귀엽다.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야지.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이 고민해 봐.”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길로 가고 있을 거야.”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밥상머리의 수다는 사소한 일상의 대화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들이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와 반응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배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차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두 아이의 웃음과 말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다 보면, 이 모든 순간이 아이의 마음을 자라게 하는 시간임을 느낀다.
밥상머리의 수다는 결국, 아이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을 자라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우리 가족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서로의 생각이 함께 깊어간다.
생각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래, 잘 커가고 있구나.”
따뜻한 마음이 저절로 미소로 번진다.
요즘은 밥상 앞에서도 대화가 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안타깝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숙제 다 했어?”, “다음 주부터 시험이지?”, “화장은 또 언제 했어?”
이런 말들만 오간다면, 아이는 입을 닫고 부모는 결국 잔소리로 끝나게 된다.
대화의 시작은 말이 아니라 마주 앉는 마음의 자세다.
밥상머리의 수다는 아이를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다.
가치관 교육 전문가 린다 & 리처드 에어 부부는 <부모가 꼭 심어주어야 할 아름다운 가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정은 가치의 첫 학교다.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그들은 정직, 책임, 인내, 존중, 사랑처럼 삶을 지탱하는 열두 가지 가치를 일상의 대화와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가를 배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밥상머리에서 오가는 짧은 한마디,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해?” “그건 참 멋진 생각이네.”
이런 대화의 순간들이야말로 아이 마음속에 가치의 씨앗이 심어지는 때다.
교육은 교실이 아니라, 가족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그 대화가 아이의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이 바로 아이의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