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긍정의 말을 하면, 아이도 세상을 긍정의 언어로 바라본다.
반대로 부모가 사사건건 툴툴거리며 불만을 쏟아내면, 아이 역시 세상을 향해 투덜대는 법을 배운다.
아이가 어릴 적 반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열 명 남짓 되는 엄마들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문한 음료가 몇 잔 뒤섞여 잘못 나왔다.
다른 엄마들은 “괜찮아요, 바쁘셔서 헷갈리셨나 봐요.” 하며 웃어넘겼지만,
한 엄마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몇 잔이나 잘못된 건데요? 주문한 대로 안 나왔잖아요!”
“아니, 이렇게 정신없을 거면 주문을 받지를 말던가요.”
순간,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아침 시간, 쉴 새 없이 주문을 받던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에는 당황과 미안함이 엇갈려 있었다.
모임 내내 그 어머니는 학교 행정의 미숙함, 담임 선생님에 대한 불만, 작은 꼬투리까지 줄줄이 꺼내며 불평을 이어갔다.
처음엔 ‘의견이 많으신가 보다.’ 싶었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투덜거림에 결국 듣는 것도 지쳐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아이가 무심히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00는 친구들이랑 자꾸 싸워요.
특히 남자애들한테 ‘책가방 똑바로 걸어라, 조용히 해라’ 하면서 자꾸 잔소리를 해요.
그냥 놔두면 될 텐데, 매번 뭐라고 하니까 애들이 싫어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그날의 카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바로 그날, 불평을 멈추지 않던 그 엄마의 딸이었다.
불만을 습관처럼 내뱉는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국 부모의 말을 닮아간다.
아이에게 따뜻한 언어를 물려주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말의 온도를 바꿔야 한다.
그 한마디, 그 한 문장이 아이 마음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아무리 아이가 긍정적인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부모가 매번 “그 정도 해가지고 뭐가 되겠어?”,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비난과 비교의 말을 반복한다면,
아이는 어느 순간 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말들은 조용히 아이의 마음에 방향표처럼 박힌다.
부모와 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말을 주고받는다.
“실수가 실력인 거야? 백점이 전교에 서른 명이 넘는다는데, 그렇게 매번 실수하면 어떡하니.”
“그게 뭐가 어려워?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말은 순간에 흘러가지만, 그 말의 온도와 리듬, 시선과 태도는 아이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부모가 툴툴거리면 아이도 세상을 향해 툴툴거리고,
부모가 긍정의 말을 하면 아이도 세상을 긍정의 언어로 바라본다.
결국 아이의 말은 부모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가 된다.
말은 유전보다 강한 모방의 힘을 가진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모델링(modeling)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배우는 존재다.”
툴툴거림은 전염된다.
아침마다 “아휴, 피곤하다. 오늘 또 출근이야….”
“집은 왜 이렇게 지저분해? 아무도 좀 안 도와주나?”
이런 말로 하루를 여는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는
어느새 불만의 말투로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는 학교에 가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 급식 또 그거야? 진짜 짜증나.”
“선생님은 왜 맨날 그런 말만 해?”
부모가 세상을 향해 내뱉은 불평의 언어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말투가 된다.
부모가 툴툴거리며 불만을 말하면 아이는 세상을 ‘불만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하면 아이는 어려움 앞에서도 유연한 언어를 선택한다.
말의 내용보다 더 깊은 것은 부모가 하는 말의 태도다.
“괜찮아.”라는 한마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보여주는 언어다.
결국, 부모의 말이 아이의 언어가 되고,
그 언어가 아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된다.
부모의 부정적인 말은 단순히 듣고 흘려보내는 소리가 아니다.
부모의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 ‘내면의 대화(inner talk)’로 저장된다.
그리고 그 대화는 시간이 지나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
즉 아이가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으로 건네는 말로 바뀐다.
심리학자 아론 벡(Aaron Beck) 은
"사람의 감정과 행동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 는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습관,
즉 머릿속 자동 재생 버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그 정도 해가지고 뭐가 되겠어?”,
“넌 왜 항상 그런 식이니?”라는 말을 반복하면
그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 그대로 녹아든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그 말은 ‘자동적 사고’로 되살아난다.
“역시 난 안 돼.” “또 실수했어.”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부모의 말이 아이의 내면 대화(inner talk)가 되고,
그 내면의 대화가 다시 자동적 사고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한마디는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아갈지를 결정짓는 심리적 모델링이 된다.
반대로, 부모가 “괜찮아, 지금은 과정이야.”
“한 번 더 해보면 더 잘할 거야.” 이런 말을 심어주면,
그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서 “괜찮아, 난 아직 배우는 중이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라는 자동적 사고로 변한다.
결국, 부모의 말은 아이의 마음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내면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그 언어가 아이가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짓는다.
아이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울리는 것은 비난의 말보다 믿어주는 한마디,
불안의 소리보다 괜찮다는 위로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배운다.”
— 앨버트 밴두라 (Albert Bandura)
부모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속에 쌓여, 그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된다.
아이에게 건넨 한마디가 흔들림 속에서도 마음을 붙드는 기준선이 되고,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좌표가 된다.
그러니 오늘, 아이에게 전해주는 그 한마디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말하자.
“우리가 건넨 한마디가 아이가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