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ckie Feb 28. 2020

영원히 웃는 비극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저의 독서습관 중 가장 고치고 싶은 것은 'TV 채널을 돌리듯 책을 읽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면요, 한 권을 진득이 읽기보다는 이 책 저책 기웃거리며 읽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요새 읽고 있는 책만 해도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너무 맛있어서 잠 못 드는 세계지리', '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진', 권기태 장편 소설 '중력', '일리아스'와 '파우스트'를 동시에 읽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끔은 스스로도  저의 독서 습관이 집중력 부족 탓인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책에 푹 빠져서 읽다가도 왠지 지루함이 몰려오면 다른 '활동'으로 무료함을 전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책'으로 무료함을 전환시키는 저의 게으른 독서 습관인 탓입니다. 아, 게다가 요새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외출을 못해 더욱 독서 시간이 늘어나면서 돌려보는 책 리스트가 좀 더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쁜 독서 습관과는 달리 그나마 조금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픈 독서습관도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얼마가 걸려도 완독을 하긴 한다는 겁니다. 시간이 많이 오래 걸려도 말이죠. 바로 이 책 ' 웃는 남자'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 책 '웃는 남자'를 읽으려고 마음먹은 게  뮤지컬 '웃는 남자' 때문이었으니 완독 하는데 1년 반쯤 걸린 셈입니다. 읽기 시작한 게 뮤지컬 예매 직후였습니다. 전 2018년 초연 중 박강현 배우 캐스팅 편으로 관람했습니다. 요즘 재공연 중인 뮤지컬에도 박강현 배우가 여전히 출연 중이더군요. 제가 뮤지컬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왜 초연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게 해 준 작품이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웃는 남자' 뿐 아니라 '파리의 노트르담'이나 '레미제라블'도 모두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니 어찌 이 분 작품은 계속 뮤지컬화 되는 건지, 도대체 이 분만의 매력이 뭔지 궁금해진 점도 크다 하겠습니다.






여하튼 꽤나 마음 크게 먹고 읽기 시작한  이 책 ' 웃는 남자'는  원래 3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3,000원을 아껴보겠다고 합본판인 스페셜 에디션을 구입하였는데 9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었습니다. 도저히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집에서만 읽느라 완독이 더 오래 걸린거라고 변명하고 싶네요.





빅토르 위고의 다른 작품인 '파리의 노트르담'도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아주 단순하거든요. 이 책 '웃는 남자'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요약됩니다.



인신매매단인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형적인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을 알 수 없는 아이 그윈플렌과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어 가던 맹인 소녀 데아, 그리고 그 두 아이를 거두어 기르는 떠돌이 광대 극단의 단장 우르수스, 이 세 사람을 통해 가진 것 없는 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견뎌가는가를 이야기해 줍니다.  물론 숨겨진 그윈플렌의 화려한 과거(?)가 우여곡절 끝에 밝혀지지만 그는 귀족으로서의 껍데기 뿐인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데아와 죽음을 함께 합니다.



900페이지짜리 소설의 줄거리라 하기엔 너무 간단하지만 귀족회의 장면에 대한 묘사나 각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 역사를 설명하는 챕터들을 읽어보면 도대체 작가가 이 많은 자료 조사를 어찌 다 했는지 약간 질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이 느낌은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노트르담 성당의 역사와 외관을 묘사하는 데에서도 똑같이 느끼긴 했습니다. 약간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비정상성(?)까지 느껴졌다랄까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니까요.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찢어진 입의 광대 그윈플렌에서 퍼메인 클랜찰리 경이라는 귀족의 신분으로 바뀐 후, 귀족회의에서 백성과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촉구하기 위해 그윈플렌이 귀족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과 대사가 결국은 빅토르 위고가 이 작품을 통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윈플렌 혼자 10페이지 넘게 이야기하니 좀 지루해 질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웃는 남자'는 저의 침대 옆 책장을 떠나 드디어 완독한 책들만 허락된다는 서재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웃는 남자'와 관련지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 책이 베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배트맨 속의 조커와 웃는 남자 그윈플렌은 캐릭터적인 면에서 너무나 상반되므로 전 개인적으로 달가워하지 않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흥미로운 사실인 건 맞습니다.



이 책 '웃는 남자'는 '제1편 바다와 밤' 그리고 ' 제 2편 왕의 명령에 의해서' 로 이루어지는데요. 그윈플렌의 얼굴이 묘사되는 다음 부분은 바로 1편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입니다.  영원히 웃을 수 밖에 없기에 운명의 비극성이 더욱 돋보였던 그윈플렌의 ' 웃는 남자' 였습니다.





"귀까지 찢어진 입, 드러난 잇몸과 으깨어진 코, 너는 이제 가면을 쓸 것이며, 영원히 웃으리라"                                              























작가의 이전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의 중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