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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ckie Dec 27. 2019

관계를 정리하는 것의 중요성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

 



비단  금     錦

수놓을  수  繡


한 15페이지쯤 읽었을 때였을까요, 옆에서 운전하던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 금수는 도대체 무슨 뜻 이래?"

어휘력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저는 금수가 짐승이라는 뜻인 줄 알았답니다.


읽는 내내 문체가 보송보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솜털 같기는 한데,  읽을수록 그 솜털의 파스텔톤이 점점 바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사랑이나 불륜을 이야기한다라기 보다는 관계의 끝맺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 거나요. 두 사람과의 관계가 친밀했건 혹은 피상적이었건 간에 중요한 건 그 관계를 어떻게 맺고 또한 정리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남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작품에서 비중 있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극적인 혹은 통속 소설 같은 사건 이후, 겪어야 했던 아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지속됩니다. 그 때문인가요, 아내가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깊은 상처는 보듬어주고 위로해주어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일상의 이야기, 남편이 자신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대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비극적인 10여 년 전의 사건에 대해서도 남편은 길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내지 않습니다. 독자인 나에게는 남편이 이기적이라고까지 느껴지게 하는 자기 위주의 이야기를 그저 써 내려갔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편지를 거부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내는 화를 내기보다는 그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서 위로를 얻고 남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갑니다. 관계란 시작보다는 끝이 더 중요하구나, 결국 누군가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결국 인간관계에서의 주도권은 결국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자기 계발서에나 나올 만한 이야기를 상기시키더군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편지가 갑자기 끝나버리는 데에서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어떤 관계이던 마지막이란 늘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듯 말입니다. 


관계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맺음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기도 하고 우연히 끝나기도 합니다. 생의 시작과 죽음이 그렇듯 말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의지가 얼마나 하찮아질 수 있는지로 인해 허무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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