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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ckie May 12. 2020

진보적 여성들의 불안감 모음집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를 읽기 전에 '다섯째 아이'를 오프 모임에서 읽었습니다. 책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고 논쟁거리가 많아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후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인 '19호실로 가다'에 대한 제안이 몇 번 오갔지만 워낙 난해하다는 평이 있다는 뜬 소문에 다들 주춤했습니다. 하지만 읽고 난 지금 보니 각 작품이 난해하다고 느낀 것은 혹시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혹은 이해하기 어렵다,가 아닌 여전히 불안정한 여성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을 수용하는 것에 거부감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1994년 출판된 단편집의 20편 중 11편을 묶어 재출간 한 것입니다. 나머지 9편은 단편집 '사랑하는 습관'에 실려있습니다.



첫번째 수록 단편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는 순간, 이거 도대체 몇 년도에 쓰인 소설인거지, 라며 경악했습니다. 배경은 1960년대의 영국이라고 하지만 혹시 쓰여진 건 최근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죠. 단편집 '19호실로 가다'가  2018년에 출간된 탓에 해본 착각이었습니다. 성과 결혼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이라 갖게 된 의문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서 하나 빼기'는 여성을 성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느끼는 남성에게 그까짓게 별건가, 라는 관념을 지닌 여성을 등장시켜 남녀관계 보다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한 여성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의 생각을 알게 된 순간 남성의 우월감은 사라집니다. 



'옥상위의 여자'는 한낮에 옥상에서 반 나신으로 선탠을 즐기는 여자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반응(무관심, 히스테리, 흥분, 분노, 유사스토킹 등)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행동으로 모든 비난이 귀결되는 사회적 시선이 옳은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출산 후 우울증을 겪는 부인과 외도를 한 남편 사이의 긴장감을 보여줍니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게 오히려 정신적으로 편안할 수도 있다는 부인의 제안이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오히려 남편의 외도를 신경쓰지 않는 자신의 편안한 마음 상태 때문에 부인이 불안감을 느낍니다.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남편과의 외도를 제안합니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남편과 남자친구의 외도와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려는 두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재밌는 건 두 여자의 관계가 남자의 전부인과 내연녀 사이라는 거죠. 




'19호실로 가다'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부인과 엄마라는 역할만으로 정체성을 할애받지만 이 마저도 누구든지 대체가능한 역할이었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 무너저 버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완벽한 듯 보였던 그 가정도 결국은 균열이 시작되는 건 남편의 외도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진보적인 페미니즘 시각의 단편들만 수록된 건 아닙니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이나 '방', '두 도공'과 같은 작품은 환상과 현실을 중첩시켜 보여줍니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은 이별의 슬픔과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방'은 자신의 의식의 변화를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구요, '두 도공'은 꿈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영국 대 영국'은 유일하게 남녀간의 문제가 아닌 계층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 상당히 인상적이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목격자'는 남녀 간의 관심이라는 게 천박하거나 계산적인 속물적 속성일 수 있다고 보여주는 꽤나 시니컬한 작품이었다면, '20년'은 반대로 남녀관계에서 작은 의심과 오해가 평생을 잊지 못하는 아쉬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오히려 순수함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쨌건 놀라운 건 이 모든 것들이 도리스 레싱의 초창기 작품들이라는 겁니다. 2020년에 읽어도 아직은 덜 계몽된 저 같은 이는 이런 진보적인 관념이 가능한거구나, 라고 놀라기 바쁜데 말입니다.  작가들이란 참으로 깨어있어야 가능한 역할이구나 싶습니다. 뭐 하긴 생각해보면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니 이정도면 놀랄일도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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