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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ckie May 12. 2020

나만의 산수(算數) 혹은 수학(數學)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카스테라 중에서)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數學)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 –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디 엔드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演算)의 답을 보았거나,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그런 셈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는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았다. 그리고 느낌만으로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참으로, 나의 산수란.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전국연합학력평가' 라는걸 생전 처음 보고 온 날이었습니다. 고등학생 학부모가 되다보니 저도 모르게 떨렸나봅니다. 약간은 긴장해서 시험은 어땠느냐며 조심스럽게 묻는데 아이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엄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라는 소설 알아? 이거 읽어보고 싶은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1교시 국어 지문에  박민규의 단편소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문제로 나왔다는군요. ‘얼마나 인상적이었으면 시험 문제로 나온 지문을 찾아서 읽을 생각을 할 수 있는거냐’, 와 ‘긴장을 얼마나 안 했으면 저 질문이 제일 먼저 나오는거냐’라는 양가의 감정이 동시에 오갔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아이는 검색 끝에 작가이름을 알아내고 책을 구매했습니다.  덕분에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저에게 꽤나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 되었고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꼭 읽어보아야 하는 단편집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속의 '나'는 지하철에서 푸시맨 알바를 하는 고등학생입니다. 도시락 배달을 위해 아버지의 사무실을 다녀 온 후 '아버지 돈 좀 줘' 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철이 든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만의 산수'를 시작합니다. 나의 세상에는 산수만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산수가 아닌 수학을 하는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나만의 산수는  수학으로까지 넘어갈 일이 없습니다. 서글픈 현실이죠. 산수와 수학으로 구분되는 숫자로 가득한 세상이 왠지 더욱 차갑게 느껴지더군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푸시맨인 '나'에게 밀어달라고 종종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실종이 됩니다. 그리고 플랫폼에 등장한 기린을 아버지라고 확신하지만 기린은 끝끝내 이를 부정합니다. 결국은 아버지로 대변되는 우리는 사자도 아니고 하이에나도 안되고 높은 곳의 풀을 뜯어먹는 기린 밖에는 안되는거군요. 



막상 읽고 나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꽤나 생각할 게 많은, 기대보다도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이젠 대학생이 된 큰 아이에게  소설의 어느 부분이 시험에 나왔었던건지 물었습니다. 


'응? 그게 뭐더라? 생각도 안나'


왠지 저에게만 강한 인상을 남긴것 같다는  이 허탈함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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