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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건 Nov 22. 2024

#18_볶음밥

볶음밥 앞에 마주 앉아

여자 친구의 숟가락질을 바라만 본다


'살이 찐다'는 염려에

함께 맛보지 못한 행복


그렇게 먹지 못한 볶음밥은

쓴 추억으로 변해버렸다


이별이 조용히 찾아와

볶음밥 앞에 홀로 앉아있는 이 밤


빈 접시, 빈 의자, 빈 마음속에

미안함이 깊게 파인 흔적만이 남았다


입 안에 볶음밥을 한가득 넣으며

그 흔적 또한 삼켜본다




사랑은 한 접시 볶음밥처럼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것 같습니다. 함께 맛있게 나눠 먹으면 그 자체로 행복한 순간이 되지만, 때로는 그런 사소한 즐거움조차 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사랑을 하며 너무 많은 "안 돼"를 내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살이 찔까 봐, 시간이 없어서,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은 행복을 밀어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사소한 희생이라 여겼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기회마저 놓친 선택이었습니다.


헤어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함께 먹지 못했던 볶음밥 한 접시가, 사소했던 일상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었다는 것을요. 사랑 속에서 잘했던 일들은 쉽게 일상이 되어 잊히지만, 놓쳤던 순간들은 뼈아프게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노력으로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상대가 더 많이 애써야 하는 균형 속에서 사랑은 지켜집니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면, 사랑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이미 작은 균열이 시작된 상태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균열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곳에서 시작됩니다.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거창한 이벤트나 특별한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볶음밥 한 접시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요. 과거의 저는 그 순간들을 사소하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것들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의 본질이었습니다. 헤어진 후에야 이 단순한 진리를 알게 되었지만, 그 깨달음은 저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사랑은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후회로 끝내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볶음밥 한 접시의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사랑을 지키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고, 함께 나눌 시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볶음밥 한 접시는 이제 저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놓쳐버린 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소소한 순간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랑은 결국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여러분도 오늘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볶음밥 한 접시를 나누며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윤태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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