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비

by 김형건

흐린 하늘 아래

무거운 구름이 무심코 쌓이고

아스팔트 악보 위로

빗방울이 조용히 연주를 시작한다


잔잔한 고요 속

그 속삭임이 너의 이름을 부르자

내 마음의 틈새에서 그리움이 일렁인다


그리운 그대를 찾아와

빗방울들이 우리의 대화를 재연한다


마음이 너무 부풀어 올라

창밖의 선율이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안되겠다

사랑의 노래를 입에 머금고

비를 헤치며 너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는 비를 참 좋아합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 시간은 제게 큰 위로와 행복을 선사합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곤 합니다. 그런 날이면 창가에 앉아 고요히 비를 기다리며, 그 순간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곤 합니다. 빗소리와 촉촉한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장대비가 내리던 날, 그날의 비는 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골목길을 바라보던 순간,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는 듯했고, 그리움은 빗줄기처럼 쏟아졌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그 빗소리는 점차 못마땅하게 느껴졌습니다.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치 끝없는 허무와 마주하는 일처럼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랑은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비 오는 날 외출을 꺼리던 제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뚫고 그녀에게로 향했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빗방울에 젖어드는 순간마다 그녀에게 더 가까워진다는 설렘이 저를 가득 채웠습니다. 빗속을 걷는 일이 불편하기는커녕, 그 자체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의 비는 단순히 창밖을 적시던 물방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변화를 상징하는 어떤 특별한 힘으로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녀를 향해 빗속을 걸어가던 그 순간은 이후로 제게 비 오는 날의 모든 기억을 새롭게 쓰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여전히 빗소리는 제게 위로를 주지만, 이제 그 소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는 사랑으로 인해 변했던 제 마음과 행동을 떠올리게 하고, 그날의 설렘을 다시금 불러일으킵니다.


비는 단순히 고요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볼 때면, 그날의 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그날처럼, 다시 한 번 사랑을 향해 걸어볼 용기가 있냐"고.


윤태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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