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여권에 담긴
무기력한 청춘의 잿빛 꿈
그것이 청춘을 재단하는 척도겠냐마는
세상을 향한 갈망이 있지만
무거운 발걸음으로 항상 제자리
이루지 못한 가슴 속 열정은
무늬만 찬란한 일상에
어둠만 드리운다
하지만 빈 여권 속
아직 채워지지 않은 페이지에서
청춘의 꿈을 새길 미래의 빛을 본다
오래된 짐을 정리하다가 먼지가 쌓인 여권을 발견했습니다. 그 속의 빈 페이지들은 마치 제게 말을 걸듯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너의 청춘의 기록이냐”고 묻는 것 같았죠.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며 자신만의 청춘을 써 내려갈 때, 저는 그저 제자리에서 세상을 향한 갈망만 품은 채 현실에 매여 있었습니다. 여권의 빈 페이지들은 그러한 나날들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권이 청춘을 재단하는 유일한 척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빈 페이지는 저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열정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 발하지 못한 열정들이 무늬만 화려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통해 자신을 확장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멈춰 서 있었던 셈입니다.
이제는 청춘이라는 말을 사용하기에 조금 부끄러운 나이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권 속 빈 페이지들은 저에게 여전히 희망의 여백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채워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여백은 단순히 여행지의 도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저를 채울 공간이기도 한 것이죠.
비록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여권을 손에 들고 다시 세상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새로운 시작을 향한 설렘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실의 무게를 핑계 삼아 미루기만 했던 제 꿈이 이제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여권 속 빈 페이지는 우리 삶의 무수한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를 기록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를 새겨 넣을 여백입니다. 여러분 또한 각자의 빈 페이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권 속에 있든, 마음 속에 있든, 그 공간이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때는 무거웠던 그 공간이 이제는 설렘의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여백을 자신만의 색으로 채워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윤태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