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_정리

by 김형건

세상의 소음과 마음속 소란으로

그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어느 답답한 저녁


마우스를 움켜쥐고 아이콘을 휘저어

파일을 삭제하며 순간의 해방을 느낀다


삭제했던 파일을 복구하고 수정하며

그 작은 기쁨을 누린다


이처럼 간편히 정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과거의 그림자들 휴지통으로 살며시 보내고

복잡한 현실들은 따로 묶어 폴더에 정리하고

그리웠던 기억을 다시 불러올 수만 있다면


어설프게나마 컴퓨터를 따라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어느 답답한 저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생산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화면을 바라보며 마우스를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의미 없이 아이콘을 정리하거나, 필요 없는 파일을 삭제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파일을 삭제할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정리되지 않은 파일들이 사라지는 순간, 머릿속까지 정돈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특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 우리는 무언가를 정리하려는 충동을 느낍니다. 책상을 치우거나, 서랍 속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거나, 혹은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며 불필요한 파일을 삭제하기도 하죠. 삭제한 파일은 다시 복구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할 수도 있습니다.그 순간만큼은 정리가 곧 해방이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기억과 감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삭제하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때는 소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관계들, 스스로에게 남긴 후회, 지우고 싶은 말과 행동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떠돕니다. 그것들을 휴지통에 넣고, 한 번의 클릭으로 완전히 삭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면 적어도 하나의 폴더에 정리해 보관할 수만 있다면, 필요할 때 꺼내 보고 다시 닫아둘 수 있다면, 감정의 무게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컴퓨터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은 하나의 파일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실수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삭제한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떠오르고, 정리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생각합니다. 만약 감정과 기억을 내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다면, 나의 삶도 조금은 더 단순하고 정돈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러나 그런 정리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고민하고 성장합니다. 파일을 삭제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현실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혼란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마주하고, 과거를 곱씹으며, 때로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윤태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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