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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건 Nov 01. 2024

#3_건전지

빨간빛이 점멸하는 무선 마우스

작업의 바다에서 지쳐가는 숨결을 느낀다


너도 이제 한계구나

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줘

내 몸을 붙잡는 그 말을 마우스에도 되풀이했다


장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나니

그 작은 친구는 불빛을 잃은 채 잠들었다


새 건전지로 다시 깨우니

새벽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침대로 향하며

괜스레 부러워졌다

저 간단하고도 간편한 재생이



언제부턴가 무선 마우스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선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주는 만족감은 꽤 컸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건전지 교체만큼은 주기적으로 필요했죠. 마우스의 건전지가 다 되어가면 경고 신호처럼 빨간 불빛이 깜빡입니다. 그때마다 작동이 멈추기 전에 건전지를 갈아줘야 했죠.


이 마우스를 쓰면서 느낀 건,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에 반응하며 일하는 그 작은 기계도 언젠가는 힘을 다해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종종 기계와 비슷하게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잠시 멈춰 건전지를 갈아 끼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업에 몰두하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집중의 흐름이 끊길까 쉬지 않고 이어가기도 하고, 일을 완수하기 위해 체력과 의지, 정신을 끌어모아 계속 전진하죠. 마치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책상 위에 놓인 마우스가 빨간불을 깜빡이며 “잠깐 멈춰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신호를 보내며 잠시 재충전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작은 동료 같은 존재죠.


작업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마우스 커서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제야 건전지를 교체해줍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받은 마우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제 역할을 다합니다. 피곤한 몸을 침대로 이끌며 그 단순한 건전지 교체가 때때로 얼마나 부러워지는지 모릅니다. 다시 충전되고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 마치 순식간에 다시 태어난 것 같아서요.


우리에게도 이런 간단한 재충전의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와 감정의 잔재들까지 단번에 없애주는 그런 힘이 말이죠. 현대인의 삶은 마치 무한히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과 일상에서의 피로를 말끔히 털어내고 다시 활기를 찾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기에, 건전지를 갈아 끼운 마우스가 새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마우스처럼 저에게도 재충전의 순간을 주고 싶습니다. 저만의 시간을 통해, 다시금 새벽처럼 맑은 에너지를 되찾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 밤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고,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통해 저 자신을 재충전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윤태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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