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뚱이는 쉬고 싶다는데요ㅠ
작년 8월의 이야기
여기저기 술 잔뜩 먹고 진상을 부리고 다니며 시간이 흘렀다. 술을 마셔도 잠을 못 자는 지경까지 가니 더 이상 술을 과하게 먹을 필요가 없었다. 대신,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문장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니가 오토바이 타는걸 좀 말리지 그랬어?
그 댁 어른이 병원에서부터 나를 만날 때마다 했던 말이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에게 꽂혀있던 검처럼 깊숙이 박혀있었다. 남이 구박하지 않아도 스스로 구박을 많이 하는 나인데. 이미 스스로 바닥 저 끝까지 내려간 나는 몸을 관통해 땅에 꽂혀버린 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처음엔 그 말이 큰 비수였지만, 그다음부터는 덜 아팠다. 고 생각했지만 사실 괴롭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거였다. 나도 나를 크게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작 말릴걸.
후회막급이었다. 그가 퇴근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가 통화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한마디라도 더 했으면 시간이 몇 초라도 앞당겨지든 뒤로 밀리든 했을 텐데.
오토바이를 바꾼다고 할 때 뜯어말릴걸. 안된다고 할걸. 나인지 오토바이인지 둘 중에 선택하라고 할걸.
알고는 있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을 하든 안 하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없고 득실을 따져봐도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그렇지만 자연스레 이어지는 생각들은 내 의지대로 방향을 바꿀 수 없었고,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빙글빙글 돌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생각은 많아지고 일도 못 가니 시간이 남았다. 목적 없이 오래 쉬는 게 오히려 힘든 타입인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멍하니 앉아 나를 갉아먹는 생각뿐이라니.
빨리 뭐라도 해서 바쁘게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가도 장례 이후 출근한 그 하루가 잊을만하면 반복재생 되어 다시 일을 가려고 마음을 먹는 게 쉽지가 않았다.
중간중간 회사 동료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잠은 잘 자는지, 복날인데 뭐 좀 챙겨 먹었는지 등을 묻다가 어느 날엔, 힘들더라도 일주일정도씩 출근해보면 어떠냐고 물었다.
제안이 고맙기도 했지만, 재차 묻는 언니가 야속하기도 했다.
일을 못하고 있어서 가장 답답하고 속상한 건 나인데. 할 수 있는데 시도도 안 해보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멘털 관리가 이래서 중요하다.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꼬아서 생각을 하다니.
그러던 와중에, 다른 일거리가 들어왔다.
친언니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위한 아르바이트였다. 간단한 그래픽 작업이라 쉬울 거라고 해서 테스트를 해 봤는데 정말 어렵지 않아서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단 3분 만에 후회했다. 작업 전 봐야 하는 빽빽한 매뉴얼과 이미지들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하나도 안 되고, 스스로 돌머리가 된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이 됐다.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여러 번 보다가, 결국 못하겠다고 했다.
"니가 못하면 언니가 커버 쳐줄 거니까 조금만 더 해봐"
1차 탈주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낯선 프로그램이라 공부를 하며 작업을 했는데, 덕분에 시간이 빠르게 가긴 했던 것 같다. 언니에게 피해가 갈까 봐 더 꼼꼼하게 보고, 시간을 못 맞출까 걱정이 되어 그런지 잠이 더 안 왔다. 띄엄띄엄 3시간은 잤었는데, 잠을 한숨도 못 자는 사태가 벌어졌다. 더 이상은 힘들었다. 지금까지 일한 건 그냥 무료봉사라고 생각할 테니 하차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말라니까? 니가 못하면 내가 할 건데, 내가 하면 금방 하니까 걱정 말고 좀만 더 해봐"
2차 탈주시도도 처참히 실패했다.
일을 하려니 느닷없이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니 머리가 더 안 돌아갔다. 시간이 지체되니 적은 분량도 밤을 새야 끝낼 수 있었다. 애초에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업무 담당 과장님이 나에게 분량을 적게 줬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은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끝낼 분량을 혼자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가지고 있었다.
모든 걸 체념한 채로 일을 다시 꾸역꾸역 하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마감이 다가왔다. 눈은 하루 종일 아프고 어깨가 회사 다닐 때보다 뻐근했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커피를 마음대로 마시는 것.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잠시 끊었었는데, 다시 마실 절호의 찬스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마감 이후 스스로가 뿌듯하고 기특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안 한다고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파일을 전송한 뒤, 침대 위에 쓰러져 하루동안 장렬히 전사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니, 조카의 돌 준비가 시작됐다. 돌잔치 장소는 충격적 이게도, 그가 가고 싶어 했던 레스토랑이었다.
장소도 그렇지만, 언니의 지인들과 가족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평소처럼 웃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시간을 보낼 엄두가 안 났다. 상상만 했는데도 식은땀이 났다. 언니, 형부, 조카에겐 너무 미안했지만, 선물만 하고 참석은 못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좀 섭섭한 눈치였지만 내 상태를 잘 알고 있기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야. 근데 난 내동생이 있는데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해야 되는 거임? 왜? 말이 안 되는거 아니냐? 나는 너무 억울한데?
네? 제가 뭘 들은 거죠? 언니 자식 돌잔친데요?
황당했지만 태어나기를 언니 졸병으로 나온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업무가 들이닥치겠구나.
언니 집을 청소하고, 돌떡 택을 디자인하고, 선물을 고르러 같이 가고. 바쁘게 얼마간을 살아내고 돌잔치가 다가왔을 땐 이미 체력이 바닥이 나있었다. 49재 끝나기가 무섭게 온 몸살이 점점 커지더니, 돌잔치가 끝난 밤에 잔치를 열어 며칠을 앓아누웠다. 드디어 쉬는구나! 몸뚱이가 파업을 한 것이다. 아픔과는 별개로,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