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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드 Aug 30. 2024

2. 한 달 동안의 알코올중독

나를 살린 지독한 숙취

 


 장례식 내내 나는 손님도, 상주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빈소를 지켰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상복을 입지 않았고, 그렇다고 손님이라고 하기엔 내 손님도 적지 않게 왔기 때문에.

그의 누나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들은 불편했다. 가족들이 대놓고 미워한 건 아니었지만, 그 어른들 중 한 분이 특히 나를 못마땅해했다. 이유는 정확히 잘 모르지만, 남자친구는 그분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자주 말했었다.
여러 가지 사례들을 들어봤을 때 좋은 어른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썩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그중엔 무섭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열흘 간 봤던 그 어른(이하 대장 어른)의 행동은 듣던 대로였다. 집안의 결정권자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았는데, 병원에서 장례로 가는 과정들 옆에서 나는 무방비상태로 얻어맞는 힘없는 사람 1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병원에서 49재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종교가 없는 집이었지만 불교신자인 나를 따라 종종 함께 절에 가던 남자친구는 내가 준 염주팔찌를 매일 차고 다니고, 어디 가자고 하면 싫다는 법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혼에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했다.
비용적인 부분이나 매 회(주에 1번, 7회) 참석하는 것에 부담이 되실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운만 떼었는데, 어른들이 좋아하셨다. 비용은 내줄 테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곳을 찾아 알려달라고 하시기에 알겠다고 하고 며칠이 지났다.

 멍하니 울다가 며칠이 지나는 중에, 49재와 위패 관련된 정보를 언니가 대신 알아봐 줬다. 그 정보를 어른들 있는 방에 올리니 그 대장 어른이 전화로 대뜸 "야, 너 그거 하지 마." 하셨다. 내가 "혹시 뭐 때문에 그러셔요?" 하니, 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가족도 안 하는 걸 왜 멋대로 하냐고 하셨다.
예전엔 결혼 안 한 애들은 새 삶을 살라고 납골당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너도 빨리 잊고 니 삶 살아야지 무슨 49재를 한다고 하냐고 하시며, 나한테도 안 좋은 거라고 하시며 화를 내셨다. 하지 말라고 말하면 바로 '네' 해야지, 토를 달고 질문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드셨던 것이다.
이후 나랑 말을 못 하겠다며, 스트레스받는다며 내내 화를 내시곤 전화를 뚝 끊으셨다. 알아보라고 하시기에 알아본 건데 너무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가족들이 가만히 있는데 이야기를 꺼낸 내 잘못이었고, 가족이 아닌 내 잘못이었다.

 그 뒤 몇 가지의 일 이후, 나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필요한 말이나 짧은 대답 이외에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명치가 칼에 맞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다가 밉보이게 되었다간 납골당 위치나 그에 대한 다른 정보가 생겼을 때 알려주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최대한 어떤 말도 하거나 듣고 싶지 않아서, 사람이 없는 한 켠으로 가서 금강경(돌아가신 분께 읽어드리면 좋다는 불경 중 하나)을 읽다가 그의 가족이 모르고 내가 아는 손님이나 내 손님이 오면 맞고, 다시 구석으로 가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3일간의 장례가 끝이 났다.

 발인이 끝나고 어른들께선 식사를 간다고 하시기에  맛있게 드시라고 저는 먼저 가보겠다고 하니, 같이 먹고 가라고 하셨다. 병원에서부터 장례까지 3주가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몸과 여기저기서 얻어터진 정신으로 그 식사까지 갈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먹고 가라고 하시기에 더 정성스럽게 사양기운조차 없어서 터덜터덜 따라간 식당에서 나는 술을 진탕 마셔버렸고, 바닥난 체력에 과음이 더해져 그만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


 깨어보니 남자친구 방이었다. 방안에선 남자 친구 냄새와 온기가 가득해 익숙하고 포근했다.  맨 정신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못했을 것 같던 그 공간 안에 있으니 좋기도 했지만, 행거에 걸려있는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밀려오는 후회들과 슬픔에 깊은 바닷속으로 빙글빙글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베개가 잔뜩 젖은 채로 몇 시간을 보내다 다시 잠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술을 먹기 시작했다. 주량을 한참 넘어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먹으니, 반나절동안은 죽은 듯이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지독한 숙취 때문에 다른 생각이 안 났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게 기억이 끊기니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친구들은 술 그만 먹으라는 대신 만나서 뭐 먹을래? 하며 연락을 했고, 내가 자살할까 봐 몇 시간에 한 번씩 날씨를 비롯한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생사 체크를 했다. 나는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지옥 한가운데에 놓인 술독 안에서 가만히 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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