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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디즈 Oct 15. 2018

가을하늘 아래 저희랑 차 한잔 하실래요?

흙에서 도자기를 건져 올리는 귀농 부부의 이야기

흙 토(土)에 옥 림(琳), 토림도예입니다. 

토림도예는 젊은 부부가 다기를 만드는 도예공방입니다. 부부의 호 토림(土林)과 아림(芽琳)에서 흙 토, 옥 림 이렇게 한 글자씩 가져와 이름을 지었어요. 흙에서 옥(보석)처럼 귀한 도자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토림도예는 꼭 1년 전 가을, 와디즈에서 리워드 펀딩을 진행했어요. 많은 분들이 토림도예의 얇고 푸른 찻잔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무려 목표금액의  2311%를 달성했지요. 펀딩이 끝나고, 부부는 272명의 서포터에게 이름에 걸맞게 정성을 모아 만든 보석을 전달했습니다. 영롱하더군요. 이렇게 젊은 부부가 어떻게 안성 작은 마을에서 도자기를 만들며 살게 되었을까요?


뜨거운 물에 우러난 찻잎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도자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남편 정현 씨의 어머님이 다도를 공부하셨대요. 그 덕에 정현 씨는 어려서부터 다기를 만지고 차를 마셨고요. 찻잎이 뜨거운 물에 우러나듯 차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전공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에서 도예를 배우다 4학년이 되던 해에 갓 입학한 유미 씨를 만났습니다. 정현 씨가 학부를 마치고 먼저 토림도예를 시작했죠. 유미 씨는 졸업 후에 아이들에게 공예를 가르쳤고요.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서 함께 토림도예를 꾸려나가게 되었습니다. 


날렵하고 가는 곡선을 좋아하는 정현 씨를 닮은 기본 라인 작품과 유미 씨의 거칠고 자유로운 작업 스타일이 반영된 한정판이 어우러져 지금의 토림도예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이것저것 시도하다 발견한 빈티지 블루는 토림도예의 시그니처 컬러가 되었지요.


가마를 때고, 뜨거운 물을 끓이며


부부는 지금 안성에서 지내요. 두 사람이 졸업한 학교가 안성에 있어서 익숙한 동네에 자리를 잡았대요. 한 건물 안에 작업실과 부부의 신혼집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도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은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입구는 따로 두었고요. 

작업실 바로 옆에는 차실이 있습니다. 차실은 아내 유미 씨의 아이디어였어요. 작업하다 지칠 때 잠시 쉴 겸 부부가 꾸준히 모은 다른 작가들의 그릇도 전시할 겸 만든 공간이에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차를 마시며 둘 만의 시간을 보낸 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정현 씨는 차를 마실 때 입술로 느껴지는 찻잔의 두께감을 생각하며 오후 내내 도자기를 빚어요. 너무 두꺼우면 불편하고, 너무 얇아지면 부담스러우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요즘 많은 분이 토림도예의 다기를 알아봐 주세요. 와디즈에서 진행했던 펀딩도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이 참여해주셨고요. 알음알음 깊은 안성 골짜기까지 토림도예의 다기를 사러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멀리까지 찾아주시는 마음이 감사해 부부만의 차실로 손님들을 초대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을 다해 다기를 만드는 작가와 그 다기를 곱게 사용할 손님으로 만나서인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쉽게 마음이 열려요. 차를 사이에 두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대요. 참 신기하죠? 


복닥복닥 쌓여가는 안성 골짜기의 하루

그렇다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안성 생활이 효리네 민박처럼 늘 즐거운 건 아니에요. 도예 말고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매일 집 주변에 잡초도 뽑아줘야 하고, 요즘 같은 여름엔 잔디도 빨리 자라서 매주 시원하게 깎아주어야 해요. 배달되지 않는 지역에 살다 보니 가끔 식사 준비도 버거울 때가 있어요. 장이라도 한번 보러 시내에 나가면 하루가 훌쩍 지나버리고요. 딸 서아는 어찌나 부지런한지 매일 일곱 시도되기 전에 일어나 눈을 똘망똘망 뜨고 엄마·아빠를 찾는대요. 올빼미족이었던 부부는 어느덧 새벽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일들로 점철된 하루지만 정현 씨와 유미 씨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니 잡념도 사라지고 오히려 작업 결과물도 좋다며 빙긋 웃습니다. 바쁘긴 해도 공예가는 만들어진 공예품이 쓰일 때 가장 빛난대요. 많은 분이 토림도예를 찾아주시는 요즘 ‘아 우리가 정말 흙에서 옥을 빚어내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드신다네요.

 

밀려드는 주문서를 정리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가 잠든 시간. 두 사람은 마주 앉아 푸른 찻잔을 입가에 가져갑니다. 안성의 짙푸른 밤도 깊어만 가네요. 


기획/글 김영아

사진 토림도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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