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도 인연이다.
처음 원형탈모가 나타난 건 중학교 3학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목과 뒷머리 경계가 움푹 파였다. 갑자기 나타난 구멍에 대한 당혹감과 두려움은 굉장했다. 시작을 알 수 없으니 끝도 알 수 없다. 이 구멍이 언제까지 커질지, 개수는 얼마나 늘어날지. 구멍은 아주 맨들맨들했다. 원래 머리카락이 있던 자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부모님과 선생님,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평소 긍정적이고, 교우관계가 원만하며, 성적도 좋은(어찌 보면 뻔한 생활기록부 멘트 같지만, 실제로도 저렇게 지냈다. 정말.) 아들이자, 친구이자, 학생이었다. 뭐가 스트레스인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원형탈모가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놈의 구멍이 스트레스긴 했다. 한참 외모에 신경 쓸 나이였으니까. 정리하자면 스트레스의 원인 따윈 모르겠고, 원형탈모가 스트레스였다. 결국 치료만 하면서 시간이 지났다.
피부과에 갔더니 머리에다 주사를 놓았다. 그 주사를 여러 번 놓는데, 그게 너무너무너무 짜릿하다. 2주에 한 번씩 맞았는데 매번 새로웠다. 주사를 찌를 때 따끔하고 약을 조금 넣고, 주사를 뽑을 때 다시 따끔. 이건 맞아본 사람만 아는 색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병원 가기가 싫었다. 어쨌든 결국 메워졌다. 구멍이 없어졌다. 나이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까.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자리에 원형탈모가 다시 생겼다. 두발 규정이 엄격한 학교라 뒷머리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 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머리만 볼 것 같다. 아니다, 무조건 내 머리를 보고 있다. 어떤 정이 많은 아저씨는 나한테 뒤통수가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정이 너무 많아. 학교에 말을 해서 뒷머리를 기르도록 허락을 받았다. 학생 전부가 스포츠머리인데 혼자 뒷머리를 기르고 있으니 탐탁지 않게 보는 선생님도 계셨다. 가끔 아직 구멍이 있는지 체크를 하시던 선생님도 계셨다. 뒷머리를 길러 구멍을 가리니 나름 괜찮았다. 당시에는 김병지 꽁지머리나 맥가이버 머리라고 부르긴 했지만 조만간 울프컷의 열풍이 불어왔다. 시대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