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30여 년 같이 지내온 수수께끼의 사람

by 임일규

아내와 학원 원장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일함을 보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보내는 소식지였는데, 밑에 글씨가 보였다. <예술인 심리 상담>. 클릭.


"그림아, 나 이거 신청해볼까?"

아내의 긍정적인 대답. 차근차근 신청서를 작성했다. 간단한 질문들도 있었다. 신청을 끝내니 뭔가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승인이 떨어지고 상담센터와 시간을 조율해 첫 번째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 선생님과 어느 정도 대화를 하고 엄청난 양의 테스트를 했다. 기질검사부터 시작해서, 지능 검사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집을 그려보세요."


어릴 때 꿈이 만화가였다. 근데 테스트라는 단어 때문인지 아주 간결하고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뒷산이 있고, 해가 떠있는 자연 속의 집. 채광 좋은 창문도 있고, 튼튼한 우리 집. 이어서 나무도 그리고, 남자, 여자도 그렸다.


"이 남자는 기분이 어떤가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무슨 고민이 있을까요?"

"아주 사소한 고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무슨 메뉴를 먹을까? 하는 정도."

"지금 이 사람은 몇 살이죠?"

"28살 정도 됐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가요?"


"저입니다."


학원에서 레슨 중에 상담 이야기를 하는데 그림이야기를 듣고 레슨생이 물었다.

"선생님 28살 때 뭐하고 계셨어요?"

"음... 저 그때 군대... 아!"


뒤늦게 간 군대 시절과 맞아떨어졌다. 27살 크리스마스이브에 입대했더랬다. 그리고 28살 초반에 자대 배치를 받고 딱 일주일. 의외로 너무 힘들어하다가 혹한기 훈련에 돌입해 선임들과 좀 친해지면서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는 아주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마치 성인이 되자마자 쉼 없이 달리기만 해야 했던 사회에서 휴가를 떠나온 것 같았다. 시키는 것만 해내면 되었고, 쉬는 시간엔 그냥 쉬면 그걸로 족했다. 휴일엔 아이들과 족구를 신나게 했다. 군대에서 생활하는데 아주 부족함이 없는 월급을 받고, 군것질도 하고, 운동도 하고. 걱정 없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내가 그렸던 27살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할 수 있는 것이 더욱 많은 지금 내 주변의 환경.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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