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잠깐 미루고.
반가운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늘 웃으며 말을 걸어주던 학생회장, 영찬이형이다. 동티모르에서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격리기간도 생각하면 일분일초가 귀한 시간일 텐데 여전히 따뜻한 형은 선뜻 시간을 내주었고, 나는 다음날 바로 형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형이 내려 준 향 좋은 커피를 시작으로 안부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고, 한바탕 수다가 시작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의 수다는 생각보다 진하고 뜨겁다. 형이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한 이야기. 최근에 지역을 옮기게 된 이야기. 동티모르의 인터넷 속도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가, 내가 술을 끊게 된 이야기. 최근 열심히 하던 요가 이야기. 원형탈모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형과 나는 성격이 참 비슷했다. 시작은 MBTI였다. 둘이 같은 ENFJ였다. 그리고 성격에 따른 일화들을 나누다 보니 서로 소름이 돋아버렸다. 형과 나는 전형적인 불쌍한 어른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보다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해야만 하는. 시간을 늘 알차게 쓰고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루의 성과들을 곱씹으며 만족해야만 하는 그런 우울한 어른이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내와 결혼했고, 오랫동안 가졌던(혹은 심긴) 신념이 흔들렸고, 비로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우리는 이런 어른이 되어버린 이유가 궁금했고, 이렇게 답을 내리기로 했다.
-고등학교가 우릴 이렇게 양성한 거야.
“양성”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불쌍한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양성”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주위 어른들이 참 좋아했다. 말하자면 명문 고등학교였다.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 너무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바지통의 단정한 교복, 가슴에 달린 플라스틱 명찰과 깃에 부착한 배지. 학교 이름을 외치는 거수경례. 흡사 군대 같았다. 그리고 그런 것이 “명문답다.”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늘 외치던 말씀이 떠올랐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환경에 잘 적응하던 형과 나는 야망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고, 어떤 환경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것이 그 시대의 어른들과 우리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원하는 인간상이었다. 아주 잘 “양성”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챙기지 않았다. 야망이 늘 우선이었다. 휴일에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후회 비슷한 감정과 함께 잠자리에 눕곤 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현재를 살기로, 더 이상 야망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행복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마시는 이 커피를 즐기는 것으로.
이후 일정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