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알게 해 준 바보 같은 장난감
2018년 어느 날, 나와 우리 밴드 멤버들은 공연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심심하면 이거 해봐. 공연을 기획한 <빅터> 형이 어떤 장난감을 건넸다. 줄에 매달린 동그란 공을 띄워서 움푹 파인 나무 막대기에 올려놓는-그건 매우 기초적인 사용법이었지만-장난감이었다. 우리 멤버들은 그 바보 같은 장난감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다. 우리 멤버들 중 가장 못하는 사람은 나였다.
공연이 끝나고 그 바보 같은 장난감에 대해 궁금해졌다. 빅터 형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빅터 형은 유튜브 영상을 활용해 나에게 엄청난 세계를 보여 주었다. 대화를 나누며 뭔가 위험한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장난감의 이름은 <켄다마>. 시초는 일본의 전통 장난감인데, 미국에서 이것을 가지고 트릭 토이로 발전시켰다. 공을 올리고 옮기고 하는 기본적인 사용법을 말도 안 되게 멋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공중에서 휙휙 돌리고 저글링을 하고 균형을 잡기도 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다가 결국 성공하면 동료들이 뛰어와 마구 축하해주는 영상들.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나는 드러머다. 수없이 연습하는 것에 익숙하다. 켄다마는 나의 훌륭한 친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무 막대기에 움푹 파인 부분을 컵이라고 부르더라. 십자 모양의 나무 막대기에는 3개의 컵과 하나의 꼬챙이가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멋진 기술들을 만들고 수련하는 것이다. 물론 초심자인 나는 컵 하나에 올리기도 벅찼다.
수십 번 실패하다가 한번. 딱 한번 올라갔다. 와. 그때의 희열이란. 그 기분이 켄다마를 계속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켄다마를 알려준 빅터 형에게 보여주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동영상을 찍었다. 5분을 찍었는데 마지막에 성공했다. 10초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편집해서 잘라버리고, 성공한 영상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너무나 즐거웠다. 지인들은 그 10초를 위해 4분 50초를 땀을 뻘뻘 흘리며 실패하는 나를 이상하게 봤다.
켄다마는 나에게 실패를 알려줬다. 내가 켄다마를 하고 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에게 켄다마를 건넸다. 한번 해봐요. 재미있어요. 처음엔 잘 안 하려고 한다. 아마 실패할 테니까. 한두 번 해보고서는 다시 돌려준다. 어우 생각보다 어렵네. 이렇듯 우리는 실패에 민감하다. 실패를 두려워한다. 다시 해봐요. 금방 될 것 같아요. 켄다마를 다시 건네면 다시 실패와 마주한다. 그리고 몇 번 더 실패. 그러다 점점 실패에 익숙해진다. 이제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할 때까지 한다.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성공한다.
켄다마를 계속하니, 실력이 늘어서 도전하는 기술도 어려워진다. 이제 5분 10분이 걸리는 게 아니고 며칠이 걸린다. 한 시간 두 시간을 촬영하다가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100번이 아니라 수백 번 수천번 실패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는 것은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이 바보 같은 장난감은 나에게 실패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실패는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실패 끝에는 성공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과정 같은 것이더라. 이 글을 다 쓰고 스마트 폰을 켜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실패할 것이다. 마지막엔 땀을 뻘뻘 흘리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내가 찍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