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소외된 40대 이야기
나는 대략 15년 차 직장인이다. 방송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현 직장인 외국계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10년을 넘게 근무하고 있다. 나의 직급은 팀장이다.
야근하며 자료를 조사하고, 제안서를 만들고, 기획서를 보고하고, 기타 등등 실무는 후배들에게 넘어간 지 좀 되었다. 크지 않은 한국 지사의 특성상, 대외 업무를 주로 하는 대표를 보좌하며, 전반적인 실무 총괄/의사결정 사안 보고/본사 및 해외 지사들과의 협업이 나의 주된 업무이다.
대학원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전공하고, 이 업계를 꿈꿨던 모두가 선망할 법 한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을 때, 난 분명 이 회사에서 은퇴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MLB, NFL, UEFA, NBA, PGA Tour 등 등. 나의 업무와 출장은 많은 남자들이 선망할 만한 경기, 콘텐츠 등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도 업무에 있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난 퇴사하고 싶다. MZ세대의 꿈이 코인이나 주식으로 대박 나서 퇴사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러한 이유는 아니다.
아주 복합적인 이유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요약하자면, 어느 순간 내가 우러러보던 임원들과 대표, 소위 나의 롤모델이었던 사람들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직장에 평생을 다짐했던 큰 이유중 하나는 나의 롤모델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업무처리 능력, 인맥, 문제 해결, 말투와 행동까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되기는 힘들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비슷해지기라도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서서히도 아니고 정말 어느 한순간, 그들이 하나도 멋지지 않았다.
"저렇게 사소한 일을 통 크게 넘기지 못할까?", "어떻게 저런 일은 인맥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 "꼭 저런 식으로 얘기해야만 하나?". 답변되지 않는 질문들이, 그들과 일하고 마주칠 때마다 쌓여만 갔다. 쌓여가는 질문의 끝자락에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있다가 보면 결국 나도 저렇게 될 것 같아.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과연 단지 직장내에서의 새로운 롤모델이 필요한 것일까? 내재된 혼란과 불만들을 직장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아닐까?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그렇지 않아도 이 시대의 대한민국 40대는 혼란스럽다.
가장으로서 가족들도 챙겨야 하고, 자식으로서 부모님도 챙겨야 한다. 조카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고, 친척들도 부모님을 대신해 신경 써야 한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언감생심이며, 이해관계를 위한 새로운 관계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직장에서는 중간관리자로서 경영진을 일선에서 챙기고, 후배들도 다독이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침착하고 신뢰 가는 참모여야 하며, 꼰대 아닌 열려있는 선배여야 한다.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경제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지만, 소외되고있다.
일찍이 취업시장에서도 우리는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열심히 달려 지금에 이르렀지만, 지금 세상의 모든 혜택들은 신혼부부, 노년층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백신도 가장 나중에 맞아야 한다. 우리끼리 즐기는 재밌는 농담들은 아재 개그로 폄훼되고, 비웃음거리가 된다. 꼰대라는 단어는 40대를 정조준하고 있고, 언제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40대들은 그저 구매력이 왕성한, 모든 브랜드들의 타깃 고객군일 뿐이다. 40대들은 대한민국 호갱들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롤모델을 상실한 직장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후배들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이 길을 걷고 있었을까? 내가 사라지면, 나를 따라오던 누군가는 혼란스러울까? 아니면 일찍부터 앞을 막고 있는 내가 사라지길 바라고 있었을까?
사회적으로 소외된 40대의 정중앙에서 지금의 나를 다시 바라본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은 열심히 달려갈 수 밖에 없다.
한 1년만 푹 쉬며 남은 40대를 기획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청춘들만 혼란스럽고 아픈 것은 아니다. 사원/대리들만 퇴사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중년들도 혼란스럽다. 팀장도 퇴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