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뇽스 Dec 28. 2021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

나는 젊은 아빠인가?

학창 시절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읽었다. 입시에 치이던 시기였지만, 그 시절 소설 '아버지'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입시보다 우선되는 몇 권 안되던 책이었다. 교과서와 참고서 이외의 책을 '권장'받는 것이 단비 같았던 시기였기에,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하여 곱씹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지 못하는 가장으로서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재발견한다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이다. 출간일을 보니 1997년이다. 이미 20년이 훌쩍 지난 시대상의 반영이라 생각하니,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의 40대들이 돌아보는 유년시절의 아버지는 실로 그렇게 세상을 살아왔다. 종합해 보면,


1. 사회생활이 남자의 본분이며 모든 것에 우선한다. 당연히, 가족과의 시간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2. 가사를 돕지 않았다. 부엌은 사나이에게는 금기 구역이며, 집에 있는 시간은 철저하게 사회생활을 위한 회복을 위해 활용했다.

3. 효도에 집착했다. 나의 효도는 가족의 의무이며, 배우자, 자식들이 효도에 소홀하면 섭섭하였다.

4. 건강에 소홀했다. 잦은 술자리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상징이며, 주량은 훈장/계급장과도 같았다.


뭐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아버지/남자 어른들의 삶이 멋지게 보였다. 그들의 삶을 남자다운 삶과 동일시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여 멋지게 양복 입고 그런 삶을 살아야지 다짐했다. 




사회생활 초창기에도 소설 아버지상과 유사한 사상을 갖고 있는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며,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신혼여행 전 날까지 야근했다." "열이 40도가 올라 응급실에 실려가서도 링거 맞고 다시 사무실에 나와서 보고서 작성하고 쓰러졌다." "내가 막내 때는 자리 옆에 야전침대를 놓고 일했다." "우리 집사람은 새벽부터 정갈하게 밥상을 차려주고, 밤에 회식하고 들어가도 술상을 봐준다. 남자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등 등 라떼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세뇌가 되는 것 같았다.


과연 나를 포함한 지금의 40대들은 선배들의 세뇌와 가르침대로 그들이 말한 '남자 다운, 사나이 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나부터, 지금껏 아빠로서 나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집 앞 슈퍼는 번쩍이는 편의점으로 바뀌기 전까지 수 십 년간 노부부가 운영하는 동네슈퍼였다. 무뚝뚝한 슈퍼 주인 할머니는 내 또래의 아들이 있으신지, 유독 내가 장을 보러 가면 살갑게 대해 주셨다. 첫 째 아이가 생겼을 때는, 기저귀 한 박스를 선물로 주시며 애틋한 표정으로 축하해 주셨다. 아들뻘 젊은 아빠에 대한 사장님의 애틋한 마음은 점점 측은한 마음으로 변해갔다. 내가 아이를 메고 장이라도 보러 오면 '엄마는 뭐하고 남자를 애랑 같이 장을 보게 해'라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슈퍼를 사랑방 삼아 생활하는 동네 어른들에게 나는 유독 육아에 극성인 젊은 아빠, 아내는 남자를 장 보게 만드는 맹랑한 요즘 엄마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또한 8~9년 그 시절, 첫째와 함께 놀이터를 한창 다닐 때만 해도, 놀이터에서 아빠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나는 엄마들 사이 유일한 아빠였으며, 그중에서도 젊은 아빠로 불렸다. 간혹 놀이터에서 힘을 써야 할 일이 생기거나, 아이들이 축구와 같이 몸을 쓰는 놀이를 하고 싶어 하면 엄마들은 자연스레 나에게 뭔가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어 열심히 놀아주다 보니 나는 어느새 놀이터 엄마들 사이에 꽤 유명한 젊은 극성 아빠가 되어있었고, 그 시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를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터울이 꽤 있는 둘째와 요새 놀이터를 다니다 보면, 주말에는 오히려 엄마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느새 나도 나이가 꽤 있는 아빠가 되어버렸고, 나보다 젊은 아빠들은 그 시절 나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나의 주변에도 정확히 그 시절 아버지들의 모습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회사는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으며, 남자는 모름지기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하며, 가정은 아내 (집사람)가 일아서 할 일이다. 돈만 많이 벌어다 주면 떳떳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을 찾는 것은 모래놀이터에서 동전 찾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분명 세상은 변했다. "남자가!", "사나이가!"라는 말을 달고 산다면,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는 세평을 얻게 된다. "육아, 가사는 여자의 일이며, 나는 사회생활에 집중한다." 고 생각한다면, 쌍팔년도 꼰대 마인드라며 비아냥을 듣게 된다. 필요 이상의 업무를 혼자 떠안으려 하고, 야근을 자원한다면, 동료와 후배들은 당신을 집에서 발 붙일 곳 없는 가장 혹은 일중독자라며 수군거릴 것이다. 


분명, 30/40대 아버지들은 변했다. 운이 좋게도, 적어도 나와 주변인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 40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삶은 그 시절 아버지의 삶과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한 때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X세대이다. 우리는 새로운 아버지상을 선도하는 X세대 아버지로 살아갈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30년 후 40대가 된다면, 아빠의 40대 삶을 아래와 같이 기억했으면 한다. 


1. 가족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직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런 일상을 위해 업무를 조정한다.

2. 가사노동의 강도가 상당하다. 육아와 가사를 '돕는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상이다.

3. 효도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행복과 일상을 포기하는 것은 부모님도 원하지 않는다. 

4. 40대에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평생 고생할 수 있다. 근력운동을 놓지 않고, 유산소 능력은 극대화해야 한다. 근력운동 주 2회, 러닝 주 3 회. 지키려 치열하게 노력한다.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살아가려 한다. 


나는 젊은 아빠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미결정상태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