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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뇽스 Aug 20. 2022

3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는 남자

하마터면 탈 뻔했다. 그 자전거.

 앞 집 부부는 아이가 없다. 앞 집 남자는 일식집 사장님이다. 청담동 오마카세를 검색하면 꽤나 상위에서 검색되는 유명한 가게이다. 알고 보니, 유명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그를 마주칠 때면, 늘 한결같이 말끔한 외모와 옷차림으로 일터로 향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고는 한다. 아이 둘을 달고, 늘어난 운동복 차림으로 놀이터로 향하는 나와는 대조적이다.

 

 그는 다양한 레저를 즐긴다. 직장인들은 언감생심인 평일에도, 화려한 캠핑용품들을 챙겨 훌쩍 떠나고는 한다.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고, 여름이면 해외로 스쿠버 다이빙을 다닌다. 한가한 평일이면 골프채를 싣고 나서며 인자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그의 매장에서 그는 늘 자리를 지키며 관리감독을 할 이유가 없다.


 앞 집 남자는 나와 동갑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그가 우리와 동갑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들려주었다. 

 “XX부럽다. 우리는 뭐가 맨날 이러냐. 어쩌다 캠핑 한 번 나갈래도 후달리는데..”

 "평생 골프는 시작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스키는 국민학교 스키캠프 이후로 타본 적이 없다.., 다시 타보고 싶다."

 

 모두가 허탈하다. 

 



그러던 어느날, 와이프가 말했다. 


"앞집 사장님말야.  자전거 타시더라? 재밌을 것 같은데 우리도 자전거나 타볼까?" 


로드바이크를 검색해보니 가격이 잔인하다. 일단 친한 형의 자전거를 빌려 타기로 했다. 자전거를 빌려 들어오는 길에 앞 집 남자와 마주쳤다. 


앞 집 남자: "바이크 타세요?"


나: "네. 한번 시작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일단 빌려서 타보고 뭘 살지 고민해보려고요."


앞 집 남자: "아 네. 자전거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제 것도 한번 타보세요."


나: "아 자전거도 타시는군요? 빌려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여러 개를 타보면 안목이 생기겠죠?ㅎㅎㅎ"


앞 집 남자: "네 그럼요. 잠시만요."


그는 경쾌한 몸놀림으로 집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번쩍 들고 나온다. 검정과 은색이 섞인 그의 자전거는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볍다. 감사인사를 건네고, 내일의 라이딩을 위해 베란다에 고이 주차를 해놓았다. 


 



 라이딩 전 정보수집 차원에서 앞 집 남자에게 빌린 자전거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검색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자전거의 정가는 무려 3천만 원이었다. 중고라고 해도 족히 2천만 원은 쉽게 받을 수 있는, 고가의 한정판 바이크이다. 차 한 대 가격이다. 선뜻 시승을 위해 고가의 자전거를 내어 준 앞 집 남자가 새삼 더 쿨하게 다가온다. 


'나라면 이 가격의 바이크를 시원하게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 있었을까?' 

'어차피 마음에 들어도 살 수 없는 가격인데, 정중히 사양할까?' 

'가격 때문에 돌려준 걸 알면 좀 창피하니, 그 사이 이미 샀다고 할까?' 

'그냥 탈까'

'아니야, 망가지면 어떻게 하지?'


고가의 과분한 바이크를 타보려니 부담스러운 마음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막상 타볼까 마음을 먹어봐도, '어차피'라는 생각이 나의 온갖 상상들을 제지한다.  


결국 나는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양 빠지지 않을 핑계는, 


"바이크 타려니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요. 러닝이 전 더 맞네요. 짧고 굵게. 나중에 또 생각 바뀌면 여쭤볼게요." 정도로 결정했다. 


앞 집 남자는 나의 '핑계'를 듣더니, 집으로 들어가 또 다른 자전거 한대를 더 꺼내왔다. 접혀있는 모습이 여행용 가방만 한 크기였다. 색은 또 어찌나 내 취향이던지. 


앞 집 남자: 운동용 아니고 가볍게 산책 겸 타실 거면 이 제품이 좋아요. 한 번 타보세요. 


나: 우와. 이건 괜찮을 수 있겠네요? 보관도 그렇고. 하나 사야겠다 진짜. 얼마 정도 해요?


앞 집 남자: 200에서 300만 원 사이인데, 구하기가 좀 힘들긴 하더라고요 요새. 중고도 없고. 


300만 원이라.... 일단 3000만 원은 아니니까.


나: 오. 한 번 타볼게요. 괜찮으면 구해봐야겠어요!  


앞 집 남자: 알아봐 드릴게요. 


친절하기까지 한 그와의 대화 끝에 난 3000만 원짜리 자전거를 반납하고 300만 원짜리를 빌려 나왔다. 


그의 설명처럼, 그의 영국산 접이식 자전거는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자전거였다. 나는 시승을 마치고, 주저 없이 그를 찾아 자전거를 반납했다. 자전거가 정말 좋다며, 그래도 바쁘신데 알아봐 주지는 않으셔도 된다고, 내가 알아봐서 구매해봐야겠다고 얘기하고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애초 추천받았던 자전거의 10분의 1 가격에 불과한 300만 원짜리 접이식 자전거를 구매하였다. 물론 아내는 30만 원짜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10개월간 나의 용돈은 고스란히 카드값으로 나갈 것이다. 무리한 지출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정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부른다. 

아들: 아빠 나 게임칩 하나마 사주면 안 돼?

나: 생일에 사줬잖아? 그리고 그게 너한테 정말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지? 단순히 좋아서, 좋아 보여서 사는 건 낭비야. 필요한 지출만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해. 

아들: 쳇.. 알았어. 네. 아빠. 


아들의 풀죽은 표정을 바라보니 조금 미안했다. 그러면 좀 어떠하리. 3천만원짜리도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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