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냄새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 굳이 얘기하자면 가을이 되면 공기 중 미생물의 종류가 조금 달라지는데, 달라진 미생물의 냄새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긴 여름을 끝내 줄 반가운 가을을 맞이하며 설레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어느 과학 유튜버가 던진 말이다.
가을냄새가 없다고? 난 분명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맡고 느끼고 있는데? 미생물이었다고?
사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에 대한 그 유튜버의 폄훼에도 난 화가 나지 않는다. 단지 이 멋진 계절을 그렇게 단조로운 이론과 논리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의 직업적 소명에 일종의 연민이 느껴졌을 뿐이다.
근사한 향기, 화려하지만 깔끔한 옷차림의 숙녀처럼, 잔인한 여름과 겨울사이를 위로해 주는 가을. 일 년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은 짧지만 너무도 강렬해서 일 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는 그런 계절이다.
반고흐는 생전에 가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자신이 보고 있는 이 가을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손, 캔버스 그리고 물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F. 스콧 피츠제랄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며 가을을 계절의 중심으로 격상시켰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 조지 엘리엇은 "내 영혼은 가을과 결혼하였으며, 만약 내가 새라면 가을을 찾아 끊임없이 지구를 비행할 것이다." 라며 이 계절을 찬양하였다.
가을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불호가 없는, 혹은 아주 적은 계절이다.
벌써 입김이 난다. 벌써 저멀리 이계절의 뒷 모습이 보인다.
아쉽지만. 짧았지만. 기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