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각자 다른 곳을 향하지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신기한 순간

by waicee

퇴근길 저녁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딸아이 선물을 안고 가는 아저씨, 서둘러 나와 전화로 미팅을 마무리하는 어머니, 딱 봐도 첫 출근임을 알 수 있는 풀 정장 차림의 20대, 방과 후 다운타운에서의 girls' night에 신난 고딩들, 사이즈가 맞지 않는 하키 저지를 입은 채 마냥 들떠 있는 꼬마들까지. 제각기 다른 목적과 다른 행선지를 가진채 같은 기차를 기다린다.

추운 칼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고단했던 하루 때문일까. 모두의 표정엔 피곤함이 어려있어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아마 거울을 보면 나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어쩌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는 대부분 서로 가벼운 미소를 짓고 각자의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보지만, 요즘처럼 추워서 배터리가 나가는 날엔 간간히 small talk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It's pretty cold today, 또는 Had a long day? 한마디면 어느샌가 이미 친구. 퇴근길의 신기한 마법이다.

휴가 계획이라던지, 출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의 열의 아홉은 타지인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느새 기차가 도착한다.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들, 랩탑을 꺼내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들까지. 열차 안에는 승강장과는 사뭇 다른 적막이 감돈다. 서로 간의 잠깐의 휴식을 존중하기로 한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던 것처럼, 그렇게 조용하지만 살짝 무거운 침묵과 함께 열차가 출발한다.

중간의 역에서 대부분이 내리고, 마지막 다운타운 역에 도착할 즈음, 이미 문 앞엔 더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나온 아이들이 줄 서있다. 문 밖엔 내가 타고 온 기차를 타고 반대방향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줄을 만든다. 내리면서 가끔 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나는 이미 도착했지롱" 하는 우쭐함과 격려를 반씩 담아 미소를 보낸다.

승강장에 내린 사람들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승강장을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만이 목표인 순간. 아까 만나 이야기하던 아저씨와도 서로 see ya 한마디 후 제 갈길을 간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각자의 저녁이 궁금해지다가도, 멀리서 보이는 아파트를 보고는 나도 어느샌가 잰걸음으로 승강장을 빠져나간다.

벌써 2년째 다닌 출퇴근 길인데도 기찻길엔 항상 알 수 없는 설렘이 느껴진다. 화려한 연말 파티나 근사한 식사자리 보다도, 이 한 시간 퇴근길이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지는 요즘. 다양한 사람들과 small talk을 나누고, 피곤하지만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이 길이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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