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양의 독서모임 이야기
*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매서웠던 겨울의 끝자락. 2월의 마지막 날은 다가올 봄을 맞이하듯이 약간은 따듯한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히던 날이었다. 흉흉하던 코로나의 기세도 한풀 꺾인 추위를 따라서 사그라들고 있었기에 For me의 독서모임도 다시금 시작되었다. 거의 3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정모라서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염려와는 달리 두 명이나 참석 의사를 보여주셨기에, 운영진이었던 나와 여우님까지 총 4명의 사람이 각기 다른 책을 들고 이른 아침 스터디 카페로 모였다.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기에 10번도 넘게 읽었던 책 해리포터 시리즈 중 한 권을 들고 갔다. 당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던 여우님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을 들고 왔었고, 회원 중 한 분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생기셨다며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책을 들고 왔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한 분은 요즘 미술사에 관심을 보이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들고 오셨다. 언제나처럼 각기 다른 주제의 책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었고, 이날의 4권의 책 중 한 권을 통해 나눈 이야기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지켜오는 작은 결심 하나를 하게 된다. 아주 작은 결심이지만, 그와 동시에 For me라는 독서모임이 책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그 결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독서모임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독서모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독서모임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독서모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찾아오는 것일까? 어떤 독서모임은 깊이 있는 책 읽기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분석하기도 하고, 한 사람이 맡아서 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브리핑하기도 한다. 어떤 독서모임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친목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독서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즐거운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모임의 관계성은 매우 깊다. 어떤 독서모임은 취업활동 및 경제활동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려운 전문 서적이나, 유용한 경제 서적 등을 전문적으로 읽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For me'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여우님과 함께 'For me'를 만들 때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나를 위한 독서모임 For me'라고 지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보다는 책을 읽는 나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우님과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단순히 나를 알아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당연하기에 미처 언급하지 못했었다.
처음 함께 독서모임을 만들었던 여우님과는 그전부터 오랜 친구 사이이자 독서 메이트였다. 한 권의 책을 가지고도 며칠씩이나 치열하게 토론을 할 정도로 우리에게 책이 가지는 의미는 강렬했다. 나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쌓아올려가는 사람이었고, 여우님은 책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을 치유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다를지 몰라도,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같았다. 성장. 결국 책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동일했다. 책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모든 책은 우리에게 의미 있었고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책은 삶을 뒤흔드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생각을 다시금 두들기는 도구였다.
모든 사람에게 책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책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물론 아주 좁은 생각이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독서가들에게 책의 의미는 각자 달랐다. 누군가에게 책은 편안함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For me의 대화를 좋아하고 자주 참석하는 회원들일수록 한 번씩은 나에게 묻곤 하던 질문이 있다. '꼭 책을 읽고 무언가 변해야 하나요?' 어쩌면 자꾸만 변화를 이야기하고 어떠한 결심을 묻는 내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싶은 것은, 'For me'는 책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모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했던 실수는 '변화'나 '결심'을 지나치게 거창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책을 통한 변화나 결심은 그리 엄청난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지식, 그 책을 쓴 작가의 가치관, 책이 안겨다 주는 즐거움, 나의 취향, 선호 등등.. 설령 정말 별로인 책을 읽더라도,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불쾌해하는지, 어떤 부분을 재미없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독서는 없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달라진 생각,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들이다. 애써 변화하기 위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사람이 완전히 뒤바뀌고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도 변화지만, 책을 읽기 전 보다 아주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것 또한 똑같은 변화이다.
'변화'가 거창하지 않듯이, '결심' 또한 거창하지 않다. 바로 그 변화로부터 겨우 딱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바로 '결심'이다. 경제 관련 서적을 읽고 나서 궁금한 게 생겨서 '다른 경제 서적을 읽어봐야지.' 라거나. 해리 포터를 읽으니 재밌어서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앞으로는 재밌는 글을 읽고 싶을 때는 해리 포터를 또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정말 재미없어서 도저히 다 못 읽은 책을 보며 '이제 이런 주제와 관련된 책은 피해야겠군'이라고 다짐하는 것.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도 나중에 이런 사랑을 해야지'라고 마음먹는 것. 아주 슬픈 가족 소설을 읽고 나서 '아. 오늘 저녁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 여행 에세이를 읽고 나서 '코로나가 끝나기만 하면 여행을 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결심이다. 책이 가져다준 변화가 허무하게 흩날리지 않도록 딱 한 번만 더 이어나가는 것. 그 한 걸음이 바로 위대한 결심이 될 것이다.
사실 For me를 만들고 첫 반년 정도는 이 변화와 결심에 대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나 자신에게는 자연스럽게 변화와 결심이 생기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토끼님이 가져오셨던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책을 통해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지킬 수 있는 작은 결심 한 가지씩을 정하기로 했던 것이, 나에게 책을 통한 변화와 결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 주었다. 그날 내가 결심했던 '빨대 안 쓰기'라는 환경보호라는 측면에서는 거창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배달음식을 먹으며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있고, 비닐봉지도 잘만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빨대를 안 쓰겠다는 나의 결심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딱 그 한 발자국만큼의 결심을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전보다는 더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도 나는 빨대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