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양의 독서모임 이야기
*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따듯한 봄의 한 가운데. 그 해의 봄은 유독 따스한 날이었지만, 그중 딱 하루, 나에게는 마음이 너무나 차가웠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잊을 수가 없는 날이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동안 부디 내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말을 결국 하고야 말았던 날이기 때문이다. 끝의 끝까지도 하고 싶지 않았던 말, 그럼에도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는 말. 아니..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고심하고 내뱉어야만 하는 말. 독서모임 운영자라면 언젠가 부딪혀야만 하는 바로 그 말.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독서모임에 필요한 요소를 생각해 보고 싶다. 독서모임에서 꼭 있어야 하는 요소라면 무엇이 있을까? 우선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책'이 있다. 책이라는 요소가 빠진다면 그것을 더 이상 '독서모임'이라 부를 수 있을까? For me도 한때는 영화벙, 수다벙 등등 책 없이 모이는 적도 있었지만, 그 비중은 극히 작은 이벤트성 모임이었으며 그마저도 독서벙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어 지금은 정말 독서와 관련된 오프라인 모임만 열리고 있다. 물론 코로나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책'이 있으면 '독자'도 있어야 하는 법. 그 책을 읽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바로 '독서모임'이 된다. 책 한 권을 덜렁 테이블 위에 두고 아무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 모임은 자유 독서를 추구하는 만큼, 한 권에 책에 대해 4명이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그 책의 독자는 1명이다. 다른 3명은 그 1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독자'라는 요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책과 독자가 독서를 만들어낸다면, 그 독서를 통한 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청자는 그 들은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화자가 되어야 한다. 청자와 화자가 계속해서 뒤바뀌는 것. 우리는 그것을 대화라 부른다. 어떤 독서모임에서는 대표자가 화자로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은 청자로서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모임의 형태는 모든 사람이 화자이자 청자인 대화를 추구하는 모임이다.
'책' '독자' '화자' '청자' 이 4가지만 있으면 독서모임은 올바르게 굴러갈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책'과 '독자이자 화자이자 청자인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만들어나간다. 이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화자'인 순간이다. 책 읽는 것을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독자'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익숙한 덕분인지, 누군가의 '청자'가 되는 것 또한 익숙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는 '화자'로서의 순간이 찾아오면 눈빛에 긴장감이 서리는 분들이 종종 있다. 처음 오신 분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화자'가 되는 것의 이점이나, 부담감을 덜어내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부분은 이후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고, 오늘은 독서모임에서 '화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실 그것은 이유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화자'가 되었을 때의 이점이야 정말 많지만, 그 이점을 포기하는 것 또한 개인의 자유. 그 이점이 화자로서 독서모임에 나와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독서모임에서 모든 참여자가 '화자'여야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다른 이에게도 이득을 주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이 강연이나 수업을 듣는 곳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곳이기 때문에, '청자'로서만 존재하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 되어버린다.
For me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대표적인 것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이러한 점을 매력적으로 느껴서 모임에 나오고 있다 말할 정도다. 실제로 오늘 모임이 어땠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후기에 달리는 댓글의 대부분이 그런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너무 많아서 농담처럼 '이 말은 빼구요' 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대화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나만 해도 최근의 모임에서 좋았던 부분을 말하라면 바로 저 부분을 말하게 될 테니까.
그러한 매력은 바로 청자와 화자가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대화'에 있다. 그래서 더욱더, 화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 이기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매력적인 부분을 듣기만 하면서 가지기만 하고 타인에게는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청자'로서만 존재하고 싶다 말하는 회원이 있다면, 다른 회원들은 그 회원과의 모임이 달가울 수가 없다. 특히나 최대 4명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는 만큼. 한 명의 화자가 사라짐으로써 생기는 손실은 너무나 막대한 것이니까.
사실 독서모임에 나오면서 화자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자이기를 어려워하거나 낯설어 하기는 해도 이내 곧 익숙해지고, 참석을 거듭할수록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져간다. 더구나 이제 For me의 회원 중 다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주 익숙하다. 처음 온 사람이 화자가 되는 것을 어려워하더라도,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한 명의 화자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자가 되는 것을 직접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회원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열리는 모임마다 열성적으로 참석하지만, 자신의 책을 소개할 때에도,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을 할 때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답이거나, 잘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질문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었으며, 모임이 좋았다고 매번 참석을 하는 회원이었다. 처음에는 이야기하는 것을 낯설어 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모임에 참석하는 횟수가 늘어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점점 책을 읽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른 운영진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일주일 간격을 두고 열린 각기 다른 오프라인 모임에 똑같은 책을 가져가서 똑같은 부분을 읽고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행하는 운영진이나 참석하는 회원이 달라졌다는 점을 악용한 셈이다.
'화자'이기를 거부한 것뿐만 아니라 '독자'이기도 포기한 회원이기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만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서 이야기를 듣고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마침 다른 회원 없이 그 회원만 참석한 모임이 생겨서 그날을 기회 삼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였다. 어렵다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 그리고 자신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대로 놔두라는 말. 그의 태도를 틀렸다 말할 수는 없으나, 모임원으로써는 분명 이기적인 태도였다. 나는 단호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리도록 차가워진 마음으로 그토록 하고 싶지 않았던 냉정한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임에서 나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