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양의 독서모임 이야기
* [For me]는 이고양이 직접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경험하고 또 배워나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글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모임의 매력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 [For me]는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올리려 합니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주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가능한 꾸준히 올리려 노력하겠습니다.
이 즈음에서 For me의 시작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이 글의 1화는 For me의 첫 모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첫 모임 이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이전 글에서도 살짝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For me가 공식적으로 사람들을 모집하기 이전에도, For me는 2인 모임이라는 형태로 비공식적으로는 꽤 오래 이어지던 모임이었다. 그 시작점은 여우님(가명)이라는 인물에서 출발한다.
여우님과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나이는 한 살 위의 형이지만, 친구처럼 동료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온 사이다. 보통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동료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려면, 취미라거나 생활패턴 하는 행동 등이 비슷하고 잘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우님과 나는 모든 것이 서로 반대인 사람들이다. 성격도 취향도 인간관계를 대하는 성향도 정말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보니 이상형마저도 극과 극이었다. 그 정도로 다르기에, 나는 여우님 같은 사람을 주변에 가까이 두지 않았었고, 여우님 또한 나 같은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았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냐면, 딱 한 가지 통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었고 여우님은 궁금한 게 상당히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안 맞지만, 유일하게 대화가 통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문자가 되어주었고, 답변자가 되어주었다.
그 수많은 대화 속에서 여우님이 발견한 우리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바로 책이었다. 여우님은 나의 그 수많은 생각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가 궁금했고, 함께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대부분의 출발점은 바로 책이었다. 나는 책을, 숨 쉬고, 밥 먹고, 자는 것 다음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여우님은 공부의 목적 외에는 책을 거의 접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훗날 여우님에게 듣기로는, 처음 나를 봤을 때는, 내가 책에 갇혀서 세상을 너무 이론으로만 배운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여우님은 책보다는 경험으로 배운 것만을 믿던 사람이기에 더욱더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여우님은 내 이야기 속에서 언뜻 보이던 그 책 속의 세상을 분명 흥미로워했다. 현실과는 또 다른 이상적인 세상. 활자 위에 펼쳐진 세상으로부터 배워온 생각들. 그 생각들을 여우님은 아주 흥미로워했었다. 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었다.
대화를 통해 그 세상을 엿보던 여우님은, 어느 날 그가 지금껏 쉽게 하지 못했던 선택을 했다. 여우 님의 선택은 책을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여우님에게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자세히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나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했었고, 책 읽는 습관에 관한 책을 먼저 읽어보기도 했다는 것.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여우님이 말했다. "같은 책을 같이 읽어보자"
첫 책이 어떤 것이었더라. 내 기억에는 한참 여우님이 읽으려던 책을 같이 읽었던 것 같은데, 사실 어떤 책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책을 읽고 나서 나눈 대화들이었다. 책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부분에서 어떤 걸 느꼈는지. 책을 읽고 누군가와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본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거야 워낙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서 책을 추천 해달라거나, 책 내용을 물어본다거나 그런 적은 많았지만, 함께 읽고 나서 함께 대화를 나누어 본 경험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오랜만이냐면, 누군가와 함께 책에 관한 이야기를 그렇게 깊이 나누었던 것은 어린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 중 하나는 읽은 책에 대해서 식탁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께서 읽으신 책을 나에게 읽게끔 하셨고, 그리고 내가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책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고 왜 좋았는지. 주인공은 왜 그렇게 행동한 것 같은지. 나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했었고 나는 그게 무척이나 좋았었다.
같은 책을 읽고 난 후 나눈 여우님과의 대화는 바로 그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되살아나는 경험이었다. 정확히는 나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실 여우님이 나에게 책을 함께 읽자고 했을 때 나에게 바랐던 부분이 바로 내 어머니가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었던 것들이었다.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생각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질문을 꺼내어주는 것. 성인이 되어서 다시 즐기는 그 과정은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책으로부터 파생되는 이야기들을 마구 꺼내었고, 여우님은 살짝 낯설어했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린 시절과 다른 점은 여우님과 내가 동등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인내심과 사랑 아래에서 이루어졌던 가르침과도 같은 어린 시절의 대화와는 다르게, 여우님과 나는 함께 대화하는 동등한 관계에 놓여있었다. 물론 나에게 더 익숙한 세상이었고, 여우님에게는 아직 낯선 방식이었겠지만, 그것이 우리 사이에 상하관계를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었고 서로에게 대답을 하는 사람이었다. 익숙한 사람은 익숙한 대로 수많은 능숙한 이야기와 이따금의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고, 낯선 사람은 낯선 대로 수많은 즐거운 질문과 이따금의 신선한 관점의 이야기를 던졌다.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이 대화는 즐거웠고 서로에게 각기 다른 이득을 가져다주는 대화였다. 정기적으로 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독서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1호가 되었고 여우님은 2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