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집을 꺽는 것은 침착함이다.

FMO 독서모임 2회차 후기 / 책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by 이고양

For Me Origin은 이고양과 죠보로 두 사람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입니다.

게스트는 있지만 정규인원은 여전히 두 사람뿐인 독서모임입니다.

매번 독서모임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두 편의 기록을 남깁니다.

[모임에 가기 전, 책을 다 읽고 나서] / [모임이 끝난 후, 나에게 남은 것]

이 매거진은 이고양이 자신의 기록들을 남겨두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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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For me Orign 2회 책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모임에 가기 전, 책을 다 읽고 나서] - by 이고양


# 00


이번 책은 제목에 끌렸었다. 콘셉트에 끌렸었고, 표지에 발췌한 몇 구절에 끌렸었다. 선뜻 추천을 했고, 앞부분 프롤로그를 읽으며 괜찮은 책이라 생각했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작가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주장을 펼쳐나가는 방식이 괜찮아 보여서 읽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었다.


-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나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결합되는 과정을 겪는 일종의 대화가 될 것이다.


라고 썼었다. 하지만 틀렸었다. 대화가 아니었다. 싸움이었지.



# 01


필력에 속았고 깊이에 속았다. 이것은 깊이 있게 잘 쓴 개소리다.

그것을 229페이지나 읽고서야 알아차린 나 자신의 한심한 안목 덕분에

책의 대부분의 꼭지마다 일일이 반박을 달았던 나 자신의 반항적익인 성실함 덕분에

내 생각을 훨씬 더 견고히 할 기회를 가졌다.


프롤로그부터 마지막 한 페이지까지 정말 단 한 부분도 동의가 되지 않았다.

정말 나와 정반대의 사상을 가진 작가였으며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말을 잘하고 가장 그럴듯한 논리성을 가진 책이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아니 그 어떤 실제 토론보다도

훨씬 더 격렬하게 싸울 수 있었다.

이 책은 던져 버릴 만큼 수준 낮지는 않으면서도

욕이 나올 만큼 내가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의 생각을 한층 더 날카롭게 벼릴 수 있었다.



# 02


음... 작가에 대해서는... 딱 누군가가 떠올랐다. 옛 지인.

그 지인은 나를 참 많이도 열받게 했었다.

이 작가가 딱 그 사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사보다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은데, 사고방식은 딱 똑같은 사람.


자신이 갖지 못한 것, 혹은 자신의 불행한 부분에 대해서

세상 사람 모두가 다 그럴 것이며, 그것이 마땅히 옳은 것이라 합리화를 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들은 사실 불행을 감추고 행복한 척하는 거라 말하는

그야말로 불행의 추종자.

이 작가는 거기에 쿨병까지 도져버렸다. 허무는 당연한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 03


허무를 칭송하고 치열함을 폄하하는 작가에게

덧없음을 진리처럼 여기며 의미를 의미 없게 여기는 작가에게

죽음을 숭배하며 삶을 가치 없게 만드는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치열함의 결과가 두려워 치열하지 못한 주제에

치열하게 나아가려는 이들의 발목을 잡지 말아라

당신의 치열함이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치열함의 결과가 실패는 아니다.


의미를 현실로 일구어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자가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손을 묶지 말아라

당신의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바라볼 줄도 모르면서

삶의 가치를 동경하는 이들의 눈을 가리지 말아라

당신의 삶에 가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 놓인 가치를 당신이 못 본 것이다.




[모임이 끝난 후, 나에게 남은 것] - by. 이고양


# 00


인생은 정녕 허무한 것인가? 이 책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다 읽은 뒤에도, 그리고 이 책을 주제로 포미오리진의 두 번째 모임을 가진 뒤에도,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이 질문에 사로잡혀있다. 아 그렇다고 해서 고민의 시간이 길어져서 후기를 늦게 썼다는 변명을 하는 건 아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쓸 말이 없기도 했지만, 그 복잡한 정신머리와 그보다 좀 더 정신없는 스케줄, 그리고 연말을 찾아 올해의 마지막 나태귀신의 환장 맞은 콜라보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탓이다. 뭐.. 앞선 두 개의 이유는 사실 상황이 그렇게 주어졌을 뿐, 진짜 이유는 마지막이지. 그렇다 나는 나태하고 싶었던 내 안의 욕망에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거 참 쑥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이번 두 번째 모임에서 죠보로의 질문 중 하나는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였고 그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잘난 듯이 내뱉은 주제에 이렇게 바로 유혹에 넘어가버리는 사례를 실제로 보여주게 되다니. 이거 쑥스러움을 넘어서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나의 수치는 나의 몫이지만 그 말만큼은 틀리지 않았음을 나는 결국 나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증명하는 셈이다. 유혹을 이겨낸 것은 결국 더 큰 유혹이고 더 큰 열망이다. 쓰고 싶은 글이 생겼다. 아니, 글이 쓰고 싶어 진 건가? 어떤 게 우선이든 뭐가 그리 중요할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둘 다 맛있기만 하면 될 것을. 결국 나는 글을 써야겠고, 다만 이 후기를 미루어 둔 주제에 그 부채감을 안고는 다른 글을 차마 쓸 수 없었던, 아직 뒤지지 않은 나의 양심 덕분에 다행히 올해가 가기 전에 이렇게 모임의 후기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 01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인생은 정녕 허무한 것인가? 아. 그래 맞아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정해져 있었고 이 책을 읽고도 변하기는커녕 더 고집스레 박힌 대답 말이다. '인생은 허무해서는 안된다.' 백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저 말을 바꾸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 인생은 마땅히 허무하며 그 허무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자는 이 작가의 책을 보고 어찌 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읽어야지. 읽고 어디 한번 피 터지게 싸워 봐야지. 들끓는 투쟁심으로 이 책을 모임 책으로 선정했다.


이 책도 바꾸지 못했던 나의 고집으로 가득 찬 호수에 돌을 던진 것은 역시 이놈의 오리진 포미. 죠보로의 지적이 나를 날카롭게 찔렀다.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워딩 자체는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죠보로가 저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에게 날아든 말의 창은 저러했었다. 나의 고집을, 나의 분노를, 나의 비난을 꿰뚫는 질문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허무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건가? 작가가 허무함을 옹호하고 종용한다고 거품을 물고 달려든 것일까?


물론 여전히 나의 삶에 허무함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허무함 따위를 내 인생에 채우기에는, 내가 채워 넣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딴 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렇다. 여전히 '나의 인생은 허무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내가 타인의 인생도 허무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02


역시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글로 써보니 바로 답이 나오네. 일단 두 가지를 구분하자. '허무함은 용납할 수 없음'이라는 전제는 옳은가? 그다음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타인에게 적용시켜도 되는 것인가?


자 일단 앞서 말했듯이 허무함은 용납할 수 없다. 모임이 끝난 뒤 책을 다시 차분히 살펴보았을 때에. 실은 작가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허무함을 종용하는 것까지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허무함은 필연적인 것이고 허무함에 괜히 저항하며 불행해지지는 말자 정도의 의도가 보였다. 허무함에 대한 나의 혐오가 작가의 의도를 왜곡했던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 정도의 허무함 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 허무함이 필연적이라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으며 허무함에 저항하는 것이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건 결론 땅땅. 역시 바뀔 수가 없다.


그렇다면 두 번째.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타인에게 적용시켜도 되는가? 머릿속에 생각과 치기어림이 동시에 차오르던 20대 초반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었다. 옳은 것은 당연히 모두가 지켜야만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정말 지겹도록 싸웠다. 주먹만 안 나갔지, 입 안에 혀 대신 칼이 달린 것 마냥 미친 듯이 타인을 힐난하곤 했었다. 다행히 나이를 뒷구멍으로 먹지는 않았는지,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나의 주장은 어린 헛소리였다는 것을 알아가며 수치심을 배웠고, 혀 대신 칼이 달린 입은 입이 아니라 아가리라는 것을 배웠다. 덕분에 내 삶의 기준은 철저하게 나에게 적용하고 타인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당연히 잘 되지는 않았다. 때때로 참지 못하고 불쑥 내 생각을 당연한 진리 마냥 이야기하곤 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기준을 넘어가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고 혐오감에 비난을 하기도 했다. 혹은 가까운 지인이 내가 옳지 못하다 생각하는 행동을 할 때면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쓴소리를 내뱉곤 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인가? 자주인지 가끔인지는 그들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아무튼 나는 애쓰고 노력했다. 튀어나오는 말들을 참기 위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타인에게 적용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03


그리고 그 생각이 약 5년 만에 깨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에라이 안 참아. 분명히 말하는데. 인생이 허무해서는 안돼. 내 인생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은 허무함 따위를 담고 그 허무함을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귀한 것이야.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란 말이야. 허무함을 인생에 담는 것은 잘못되었어. 허무함에 저항하는 것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그것이 올바른 삶이거든.


아 후련하다.



# 04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하면서 그걸 나에게만 적용한다면.. 그게 어떻게 옳고 그름이 될 수 있지? 나에게만 적용하는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을 논할 때나 하는 거지. 올바름은 타협하지 않아. 올바름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어. 잘못된 것은, 누군가의 옳지 못함을 비난하는 것이야. 옳지 못함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올바름을 옳다 말하지 못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어.


아니 생각해 보니 진짜 멍청한 짓 맞네. 이러다가 살인자 놈에게도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그 올바름을 너에게도 강요할 수는 없지.'라고 할 판이다. 살인자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면, 그 살인은 올바름이 되는가? 혹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은 있을 수 있지만, 그리고 올바름을 실천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심지어 나도 그 상황에서 똑같이 행동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름이 허망해지거나, 잘못됨이 올바름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내가 올바르다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 근데 맞을 수도 있잖아. 그건 나중 가봐야 아는 거 아냐? 틀릴 까봐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틀리는 게 낫다. 아니 말을 안 하면 틀린 걸 바로잡을 기회를 날릴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는 그냥 틀리고 쪽팔린 게 낫지. 나는 지금의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따라갈 뿐이다. 틀릴 것이 무섭다면 틀리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이미 옳다고 내뱉은 말조차도 또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말하는 순간까지도 이렇게 글로 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 자신을 의심하고 돌이켜 보면 될 일이다. 그렇게 틀리지 않도록 애쓰는 게 올바른 거다. 틀릴까 봐 아예 외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올바름이 될 수 없다.



# 05


이거 모임 후기를 쓰랬더니 또 엉뚱한 이야기를 잔뜩 써놓았구나... 미안 죠보로. 이게 병이라서 그래. 그래 맞아. 분명 내가 먼저 이거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써보자 해놓고서는, 정작 내가 그 틀을 깨버버리네. 음.. 알지? 이 또한 오리진 포미의 매력이고 이고양의 매력인 거 ㅋㅋㅋㅋ (찡긋).


기껏 한 달간 책을 읽고 모였으면서, 모임에서는 정작 책 이야기는 10% 정도밖에 안 하고, 이제는 책 이야기를 10%도 안 한 후기마저도 그 10%의 중 1%에 불과한 소재 하나 가지고 내용을 다 채워버리네. 정규 질문도 아니고 툭 던진 말 한마디로 여기까지 생각하는 나도 미친놈이지만, 맨날 이렇게 딴소리를 지껄이는 내 이야기에서 얻을 게 있다고 좋아하는 죠보로도 정상은 아니야.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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