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양의 연애의 비밀 세 번째.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선배. 내 마음은 누구껄까요?"
"니 마음은 니꺼지 누구꺼야"
"내 마음이 내 거라면, 이렇게 다루기 힘들다는 게 말이 돼요? 내 마음이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내 마음이지. 안 그래요?"
"왜 그런 의문이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직감으로.. 알겠어요. 좋아한다고 말하면 거절할 거라는 거"
"그런데?"
"그럼 마음을 접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마음이 안 접힌다니까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니까요."
"마음을 뺏긴다는 말이 있잖아? 뭐, 그 사람한테 마음을 뺏겼나 보지 뭐."
- 로맨스가 필요해 2012. 9화 중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인 2012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이 드라마의 많은 부분들이 인상 깊었지만,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장면이 바로 9화의 저 대사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속 강나현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이 내 거라면, 왜 이렇게 내 마음대로 안되지?" "내 생각인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이 되지 않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 '마음'이라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또 힘들어했던 경험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버튼 누르듯이 똑딱똑딱 켜고 끄는 것이 아니라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 해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을 싫어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싫어지는 것도 아니다. 1화에서도 이야기헀듯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커지기만 하니까. 그래서 오히려 좋아해서는 안 되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좋아지는 것이,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역사적으로 금지된 사랑이 더욱더 활활 불타올랐던 것도 어쩌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자주 이성의 반대편에 서있다. 이성적으로는 멈추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사랑은 항상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도대체 왜! 사랑을 할 때만큼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사랑을 하기 전의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사실 지독히도 이기적인 존재이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나 자신을 위하도록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생각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도록 되어있다. 아무리 착하고 선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만족과 행복이 결여된 이타심은 존재할 수 없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조금 걸릴 수 있겠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괜찮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말 지독할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수 없이 많은 대답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모든 대답들에서 '나'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도, 명예도, 자유도, 지식도, 여유도, 안정도, 그 모든 것들도 '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이다.
그런데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요?'라는 질문의 대답들 중에, '나'와 관계가 없이도 여전히 소중한 대답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이 당신보다 더 소중합니까?'라고 물어보아도 거침없이 "예"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대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건만, 그 이기주의를 깨뜨리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무서울 만큼 이기적이었던 내 모든 행동의 이유가, '나'에서 '그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기주의도 아니고, 이타주의도 아닌, 말 그대로 이애주의(利愛主意)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라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근본 자체가 뒤흔들려가면서 까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드라마 속의 윤석현이 내려주었다.
나라는 사람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오던,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사람이었는데, 그 마음 자체를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린 거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든 것을 결정해 주던 내 마음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을 중심으로 행동하고, 말하게 되며,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되며, 결국에는 그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원래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던 방식 그대로인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었을 뿐.
마음을 뺏긴다는 것은,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다.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뒤 흔들릴 정도의 일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서 마음을 뺏긴 사람은 지금껏 보인적 없던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사랑이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듯이, 그 사람 역시 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니 나는 뺏은 적이 없지만,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와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빼앗긴 내 마음 대신에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은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교환했다는, 고작 그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연인은 더 이상 나 자신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진 나'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은 '나의 마음을 가져간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그 사람이 되고, 그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곧 내가 되고, 그래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나를 위해 하는 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를 사랑하는 게 되고, 결국에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이 마음을 주고받던 두 연인은, 결국에는 한 마음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 고대신화를 살펴보다 보면 특이하게도 최초의 남녀가 사실 한 몸이었다는 이야기가, 꽤 많은 신화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성경'에서조차도 남자의 갈비뼈를 꺼내여 그것으로 여자를 창조하였다지 않는가? 그 많은 고대신화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연인이 서로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이유는 원래부터 하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런 표현을 참 많이 쓴다. 연인을 보며 '내 반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던가, 결혼식장에서 '이제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같은 표현을 쓰는 것 말이다. 우리 스스로를 '반쪽짜리'라고 까지 표현해 가며, 나와 꼭 맞는, 헤어져있던 나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마음을 빼앗기는 게 아니라, 그저 다시 하나로 돌아간 것뿐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이제는 나는 단순히 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라면...
그럼.. 짝사랑은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