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에 모로 누워, 당신의 해변에 가로 서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_#2017년 3월

by 토토

작곡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Schubert)는 1828년, 31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죽기 2개월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은 현악 5중주 C장조, D.956(String Quintet in C Major, D.956)이다. 현존하는 실내악 중 최고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특히 느린 악장(2악장, ADAGIO)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Rubinstein)은 이 악장을 자신의 장례식 때 연주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곡의 2악장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삽입된 두 곡 중 한 곡이다. 영희(김민희 粉)가 어스름한 해변과 공원, 또 어떤 골목에서 서성일 때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가 나직히 선율을 낸다. 그 흐름은 요지부동인 영희의 뒷모습과 닮아 있다. 검은 호수 한가운데 파문 없이 가라앉는 어느 무엇의 죽음 같다가도, 적란운이 쏟아내는 어느 무엇의 생(生) 같기도 하다. 어떤 시선으로도 해석될 수 없고, 단정될 수 없는 음악처럼, 영희가, 서 있다.

영화는 1과 2로 나뉜다. 1에서 영희는 아는 언니 지영(서영화 粉)이 사는 독일 함부르그로 떠나와 시간을 보낸다. 유부남과의 사랑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온 영희는 이국의 공간에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해보고 싶었어.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나답게 사는 거야.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기로 했어". 영희의 이같은 다짐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아서, 자신이 처했던 곤경과 마음의 상처를 덮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 보다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잊지 않으려 수없이 엎드리는 수행으로 읽힌다.

2는 영희가 강릉의 어느 소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장면은 홍상수 감독의 전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마지막 장면, 윤희정(김민희 粉)이 함춘수(정재영 粉)가 만든 영화를 보는 장면과 겹친다. 그 모호한 유사성은 지금의 영희와 전작의 윤희정을 되레 독립된 캐릭터로 구분짓고, 두 여인의 심정을 헤아리게 한다. 그녀들이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지, 생각하던 느껴지던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모습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대칭을 이루며 또 하나의 유사성을 획득한다. 당신의 이 순간은 어떤지, 어떤 감정인지, 질문하듯이.

영희는 백사장에 모로 누워 죽은 것처럼 숨죽이기도 하고, 한 공간과 한 공간을 잇는 다리 앞에 가로서서 절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기행(奇行)으로 여겨질 수 있는 그녀의 움직임은 자신의 움직임을 기행으로 바라보는 시선들과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어간다. 그것은 함부르그에서 영희가 스스로 되뇌는 다짐에서 피어난 결연함이요, 솔직함이리라. 영희는 자신과 타인의 거짓됨을 혐오하며 곱게 사그러들기 원하지만, 자신의 배고픔에 민감하고 타인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를 설득한다. 말이 아닌 움직임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나는 영희가 선배 명수(정재영 粉)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햇살 아래 담배를 피우며, 허공에 떠오르려는 듯 음악이 되려는 듯, 영희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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